한국시리즈를 앞두고 도발한 강민호(삼성 라이온즈)에게 손아섭(NC 다이노스)이 유쾌하게 응수했다.
지난 2004년 롯데 자이언츠에 입단한 뒤 2018시즌부터 삼성 유니폼을 입고 있는 강민호는 지난해까지 한 차례도 한국시리즈 무대를 밟지 못했다. 롯데에서 5번, 삼성에서 2번 가을야구에 나섰지만, 유독 한국시리즈와는 인연을 맺지 못했다.
올해는 달랐다. 정규리그 2위(78승 2무 64패)를 마크한 삼성이 플레이오프(5전 3선승제)에서 LG 트윈스를 3승 1패로 제침에 따라 강민호는 그토록 고대하던 한국시리즈에 나서게 됐다. 특히 플레이오프 4차전 8회초에는 결승 솔로포를 치는 등 본인의 손으로 이뤄낸 결과이기에 더 값진 성과였다.
이후 강민호는 한국시리즈 미디어데이에서 손아섭과 더불어 과거 롯데 시절 함께 뛰었던 전준우, 정훈을 향해 “나도 21년 걸렸다. 너희들도 할 수 있다”며 “플레이오프 2차전이 끝나고 (손아섭에게) 연락이 왔다. ‘형, 드디어 냄새 맡네요’라고 하더라. (한국시리즈 진출을 확정한) 4차전이 끝나고는 아직 축하 문자가 없다. 배 아파서 안 보냈구나 생각한다”고 농담을 던졌다.
이에 최근 만난 손아섭은 “사실을 정확히 바로 잡겠다. (삼성이) 2승을 했을 때 ‘한국시리즈 냄새 맡겠네요’라고 메시지를 보냈고 한국시리즈 진출이 확정된 뒤 엄지손가락 이모티콘을 보냈는데, 늦게 확인을 한 것 같다. 연락 안 했다는 것은 오해”라며 “한국시리즈에서 (강)민호 형이 뛰는 것을 봤다. 부러운 것은 사실”이라고 했다.
단 삼성은 한국시리즈에서 1승 4패에 그치며 KIA 타이거즈에 우승 트로피를 넘겨줘야 했다.
손아섭은 “스포츠 세계에서 2등은 의미없다. 2등부터 10등까지 큰 의미없다. 포스트시즌에 가게 된다면 보너스가 더 나온다는 정도”라며 “한국시리즈 뛰고 있는 민호 형의 모습이 부러운 것은 사실이지만, 우승 반지가 없다는 것은 저와 똑같다. (민호 형이) 우승 반지를 꼈으면 상심이 더 컸을텐데, 결국 없는 것은 똑같다. 조만간 보기로 했는데 한국시리즈 이야기를 할 것이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우승 반지가 없다는 것이다. 큰 타격은 없을 것 같다”고 씩 웃었다.
지난 2007년 2차 4라운드 전체 29번으로 롯데에 지명된 뒤 2022시즌부터 NC 유니폼을 입고 있는 손아섭에게도 한국시리즈 무대 및 우승 반지는 절실하다. 손아섭은 “민호 형이 저보다 3년 선배고 프로 생활도 3년 더 했다. 제가 먼저 (우승 반지를) 끼면 민호 형이 서운해 할 수 있다”면서도 “남 걱정 할 때가 아니다. 선배 걱정 할 때가 아니고 기회가 되면 먼져 껴야 한다. 그래야 민호 형에게 큰소리 칠 수 있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통산 2058경기에서 타율 0.321(7833타수 2511안타) 181홈런 1036타점 232도루 OPS(출루율+장타율) 0.848을 써낸 손아섭은 KBO리그를 대표하는 교타자다. 그러나 이런 그도 올해는 아쉬움을 맛봐야 했다. 전반기 마지막 경기였던 7월 4일 창원 SSG랜더스전에서 좌측 무릎 후방 십자인대 손상 부상을 당했다. 이후 9월 말 복귀했지만, 이렇다 할 모습을 보여주지 못한 채 시즌을 마감해야 했다. 한때 2위에 오르기도 했던 NC 역시 결국 최종 9위로 2024시즌 마침표를 찍었다.
손아섭은 “(부상으로 빠져있던 시기) 야구는 매일 봤다. 그 사이 긴 연패도 있었고, 팀이 힘든 시간을 보냈다. 제가 1군 엔트리에 있다 해서 팀 성적이 좋아졌을 거라는 생각은 안 했다. 야구는 한, 두명이 있다 해서 우승할 수 있는 스포츠가 아니”라면서 “단 긴 연패 동안 내가 엔트리에 있었다면 후배들이 조금이라도 의지할 수 있었을 것이다. 벤치클리어링도 있었다. 내가 있었다면 가장 먼저 달려 나갔을 텐데 그러지 못했다. 그래서 미안하고 아쉽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시즌 막바지 복귀한 것에 대해 “재활을 하면서 재 자신과의 약속이 있었다. 내년 시즌이 있기에 1년 동안 고생한 동료들과 함께 마무리하고 싶었다. 팬들에게 복귀한 모습을 보여주고 겨울에 준비하면 더 힘이 날 것 같았다”며 “한 타석이든, 두 타석이든 팬들에게 보여드리고 싶다는 생각이었다. 재활하는 동안 저에게 가장 큰 동기부여가 된 생각”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올 한 해를 돌아본 손아섭은 “좋은 일과 나쁜 일을 하늘에서 동시에 준 것 같다. 올 시즌은 최다 안타 기록을 세운 시즌도 되고 프로 와서 처음으로 큰 부상을 당한 시즌이기도 했다. 가장 기억에 남을 시즌이 된 것 같다. 못 잊을 것 같다”고 이야기했다.
최근 NC에는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이호준 감독이 새로 지휘봉을 잡았고, 팀 개편 작업에 들어갔다.
손아섭은 “(이호준) 감독님과 같은 팀에서 야구를 해 본 적이 없다. 상대 팀에서 경기했는데, 언젠가는 같이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어릴 때부터 했다. 감독님으로 한 팀에서 해볼 수 있게 돼 기대되고 설레이는 마음이 있다”며 “승부사라는 느낌을 많이 받았다. 노림수도 좋았고 결정적일 때 잘치셨다. 승부사 기질이 있는 선배이자 선수로 기억한다. 그런 모습들이 멋있었다. 제가 강조하는 상대와의 기싸움에도 밀리지 않으셨다. 기가 있어 보이시지 않나. 언젠가는 코치님으로라도 같이 해보면서 야구관이나 이런 것을 배우고 싶다는 생각을 어릴 때부터 했다”고 전했다.
이 감독은 1루까지 전력질주 할 수 없는 선수는 기용하지 않을 것과 ‘고정 지명타자’는 없다고 선언했다.
손아섭은 “저는 야구를 어릴 때부터 그렇게 배워왔다. 전혀 신경이 안 쓰인다. 베이스 러닝 할 때 저도 모르게 몸이 반응한다. 감독님 하신 말씀이 사실 당연한 것이라 생각한다”며 “선수들마다 생각이 다를 수 있지만 저는 1루까지 설렁 설렁 뛰어본 적이 없다. 기본 중에 기본이다. 전혀 어려운 부분이 아니라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계속해서 그는 “2023년 전까지는 지명타자를 해본적이 없다. 그 전까지는 수비를 계속 나갔다. 2023년에는 팀 구성상 수비가 저보다 좋은 선수들이 많이 있었기 때문에 지명타자 비중이 많았다”며 “그것에 대한 부담감은 전혀 없다. 수비를 잘하지는 않지만 매순간 최선을 다할 것이다. 제 실력만큼만 하면 감독님 운영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창원=이한주 MK스포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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