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문태성 박사의 '정의 사회, 부정의 사회'

[ 국제뉴스 ] / 기사승인 : 2025-11-16 20:51:31 기사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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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태성 정치학 박사 / 칼럼니스트(국제뉴스DB)
문태성 정치학 박사 / 칼럼니스트(국제뉴스DB)

거리에 나붙은 험상궂고 조악한 정당 현수막들이 오늘의 대한민국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품격은 사라지고, 비교육적 언어만 넘실거린다. 정치는 품위를 잃었고, 사회의 도덕적 좌표는 심하게 흔들리고 있다.

무엇보다 우려스러운 것은 우리가 지향해온 ‘정의 사회’가 아니라, 오히려 ‘부정의 사회’의 경사면을 향해 미끄러지고 있다는 현실이다. 정의는 좌·우의 문제가 아니다. 공동체가 지속되기 위해 반드시 지켜야 할 최소한의 규범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 이재명 정부 아래에서 국민이 체감하는 정의의 경계는 갈수록 흐릿해지고, 오히려 부정의가 제도 속에 스며들며 굳어지는 모습이 곳곳에서 목격된다.

이것은 정믜 사회가 아니다.

첫째, 이재명 정부가 내세웠던 ‘정의로운 시도’는 어디까지 왔는가?

이재명 정부는 출범 초 “공정한 분배”와 “사회적 약자 보호”를 국정 철학으로 내세웠다. 고령화·저성장·양극화가 겹쳐진 시대에서 복지 확대와 재분배를 강조한 문제의식은 일정 부분 타당하다. 사회적 안전망을 강화해야 한다는 점에서 분배 정의의 가치는 결코 가볍지 않다.

또한 부의 과도한 집중을 완화하기 위해 고액 자산가와 자본 소득에 대한 과세 강화를 추진한 것도 ‘세금 정의’를 실현하려는 의도였다. 사회적 책임을 회피하는 집단에 명확한 경고를 보내는 것은 민주주의 국가에서 불가피한 역할이다.

급격한 식품 가격 상승에 대통령이 직접 경고를 보내고, 담합·유통 구조 문제를 바로잡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것도 민생을 중심에 둔 정책으로 평가할 수 있다. 물가·생계 문제는 서민의 삶을 좌우하는 만큼 정부의 개입은 일정 수준 정의의 범주에 포함된다.

둘째, ‘정의의 이름’으로 추진된 정책들 속에서 되레 부정의의 그림자가 드러났다.

문제는 정부가 표방한 선의가 현실에서 항상 정의로 구현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세제 개혁은 명분으로는 공정과 정의를 외쳤지만, 금융시장에는 불안정을 유발했다. 국내외 투자기관들이 정책 리스크를 경고하고 자본 이탈 조짐까지 나타난다면 이는 단순한 정책 시행의 미숙함을 넘어선다. 정의 실현이라는 이름으로 시장 질서를 흔들어 국민 경제를 위험에 빠뜨린다면 그것은 정의가 아니라 ‘정의로 포장된 부정의’에 가깝다.

권력 집중 현상 또한 심각한 우려를 낳는다. 언론·사법·여론에 대한 간접적 영향력이 확대된다는 지적이 사실이라면, 이는 민주주의의 핵심 원리인 견제와 균형을 훼손한다. 자유를 제한해 추진되는 정의는 이미 정의가 아니다. 민주주의의 후퇴이며 부정의 그 자체다.

더욱 심각한 것은 대통령 본인과 측근을 둘러싼 사법 리스크다. 대장동 의혹, 대북송금 문제, 측근 비리, 법질서 파괴 시도 등 굵직한 논란들이 “아직 확정되지 않은 혐의”라는 이유로 장기간 정치적 방패 뒤에 남아 있다면, 국정을 책임지는 최고 권력자의 도덕성은 근본적으로 흔들릴 수밖에 없다. 정의는 구호가 아니라 책임이고 결과다. 최고 권력자의 책임이 모호해지는 순간, 정의는 설 자리를 잃는다.

기본소득처럼 한때 정부의 핵심 공약이었던 정책이 재정 부담과 물가 불안을 이유로 사실상 후퇴한 것도 문제다. 정의를 말하면서도 정치적 이해와 상황 논리에 따라 정책이 손쉽게 후퇴한다면, 국민은 정책의 진정성을 신뢰할 수 없다. 이것이야말로 ‘정의의 언어로 부정의를 수행하는 방식’이다.

셋째, 국민이 다시 세워야 할 정의의 기준이 있다.

정의는 추상적 이상이 아니다. 제도와 행위로 검증되는 현실적 가치다. 우리가 지금 회복해야 할 정의의 기준은 다음과 같다.

먼저, 정의의 기준 자체를 한층 높여야 한다. 복지 확대만으로 정의가 구현되지 않는다. 투명한 제도, 책임 있는 권력 운영, 견제 가능한 시스템이 뒷받침되어야 비로소 정의가 완성된다. 국민은 혜택이 아니라 ‘공정한 시스템’을 요구해야 한다.

또한 비판과 감시는 민주주의의 생명선이다. 언론·학계·시민사회, 그리고 야당은 지금보다 훨씬 더 날카롭고 책임 있는 검증 기능을 수행해야 한다. 정부의 세제·분배·경제 정책이 실제로 정의를 실현하는지, 아니면 정권 유지의 명분으로만 기능하는지 끊임없이 따져야 한다.

마지막으로, 정의와 성장은 대립하는 가치가 아니다. 정의만 강조해 성장 동력을 잃으면 국가의 미래는 없다. 반대로 성장만 외치다 정의를 훼손하면 공동체는 분열한다. 두 가치를 동시에 세우는 균형 감각이 지금 한국 사회에 절실하다.

결론적으로, 정의 사회는 선진국가의 좌표이다.

이재명 정부는 ‘정의’와 ‘공정’을 국정 가치로 내세우며 출발했다. 그러나 이제 국민은 냉정하게 질문해야 한다.

“이 정부가 말하는 정의는 진짜 정의인가, 아니면 정의라는 이름을 빌린 새로운 부정의인가?”

부정의는 요란하게 등장하지 않는다. 조용히, 그러나 깊숙하게 제도 속으로 파고들며 공동체를 잠식한다. 그렇기에 국민의 감시가 필요하며, 시민의 참여가 중요하다.

정의 사회는 위에서 내려오는 것이 아니다. 깨어 있는 국민의 일상적 선택과 실천이 만들어내는 것이다. 국민이 스스로 정의의 기준을 세우고 행동할 때, 대한민국은 부정의의 경사면에서 벗어나 다시 정의의 길로 나아갈 수 있다.

정의로운 사회가 정의로운 나라를 만들고, 정의로운 국민이 그 사회를 지킨다.

이것이 선진 대한민국이다.

※외부기고 및 칼럼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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