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는 속담이 있다. 깊은 물속 생김새와 흐름은 측정으로 가늠할 수 있어도, 사람의 마음은 겉으로만 판단하기 어렵다는 뜻이다. 물속 지도가 있어 물길과 흐름을 유추하듯 MBTI와 같은 성격 유형 검사가 대중에 유행하지만, 이 역시 복잡한 사람의 마음을 온전히 담아내지는 못한다. 그나마 요근래에 사람과 대화를 나눌 만큼 인공지능 기술이 발전하여 사람의 마음을 이해하는 데 한 걸음 더 나아간 점이 위안이라 하겠다.
어쩌면 사람 마음 못지않게 전력망도 파악하기 쉽지 않은 대상일 듯하다. 전력망을 구성하는 일개 요소를 분석하려면 온갖 방정식들이 필요한데, 전력망은 셀 수 없이 많은 계통요소가 맞물려 시시각각 변주하는 거대한 앙상블이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재생에너지 비중 확대와 데이터센터 전력 수요 등이 겹치면서 전력망 운영의 난이도와 불확실성은 더욱 커졌다. 매 순간 전기는 수요와 공급에 따라 쉼 없이 흘러가고 그 흐름이 멈추면 현대 문명이 순식간에 마비되기에, 전력망의 깊은 이해와 안정적 운영은 오늘날 전력 분야 전문가들이 마주한 가장 큰 과제가 되었다.
정부가 추진하는 ‘에너지 고속도로’(국정과제)와 ‘차세대 전력망’(초혁신경제 15대 선도 프로젝트) 역시 이러한 고민의 산물이다. 지역 간 전력 수급 불균형을 대규모 고압 직류 송전망(HVDC)와 스마트그리드, 그리고 분산 에너지 자원으로 해소하겠다는 구상이다. 그리고 이를 실현하기 위하여 전력 분야 연구자들은 미래 전력망을 계획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실제 운영 중인 전력망을 멈추고 실험할 수 없으므로 디지털 시대에 걸맞은 시뮬레이션이라는 도구를 활용하여 전력망 지도를 그리고 있다.
시뮬레이션을 통해 주요 계통요소를 가상 공간에 구현한 전력망 지도는 전력계통 분석과 의사결정의 출발점이 된다. 예를 들어 재생에너지 발전소를 추가했을 경우, 교류(AC) 설비를 직류(DC)로 전환하였을 경우, 혹은 예기치 못한 재난이 발생했을 경우, 전력망이 어떻게 반응하고 어떤 문제를 일으킬지 지도 위에서 검토하고 대책을 마련한다. 전력망을 둘러싼 전략과 정책의 관점에서도 전력망 지도는 미래를 가늠하는 중요한 사고의 틀이 된다.
그러나 전력망을 시뮬레이션으로 완벽하게 재현하는 일은 녹록지 않다. 어느 수준까지 현실을 모사할 것인지, 그리고 완성된 지도를 어디까지 믿어야 하는지 판단이 요구되기 때문이다. 이 지점에서 보르헤스의 ‘과학적 정확성에 관하여’라는 짧은 우화를 떠올려 볼 수 있다. 어느 제국의 지도 제작자들은 정밀함을 극단까지 밀어붙여 영토와 똑같은 1대1 축척의 지도를 만들어냈다. 그러나 사방을 뒤덮은 지도는 곧 쓸모를 잃게 되어 방치되었고 찢어진 조각만 남게 되었다. 또한 현실을 모사한 시뮬레이션이 현실을 대체한다는 보드리야르의 일성도 되새겨봄직하다. 시뮬레이션이 정교해질수록 우리는 실제 전력계통보다 전력망 지도에 나타나는 수치와 결과에만 매달리게 될지도 모른다.
이러한 우려는 시뮬레이션의 가치와 연구자들의 노력을 부정하기 위함이 아니다. 오히려 디지털 시대 전력망 지도의 한계와 의의를 돌아보고자 함이다. 일선의 연구자들은 시뮬레이션이 현실을 가상으로 완벽하게 대체하는 기술이 아니라, 현실을 보다 더 깊이 이해하기 위한 하나의 수단임을 이미 잘 알고 있다. 데이터 취득과 연산 능력이라는 물리적 한계를 고려하면 완벽한 시뮬레이션은 애초에 불가능하다. 결국 중요한 것은 현실과 시뮬레이션 사이에서 목적에 맞는 적절한 타협점을 찾고, 그 지도 위에서 통찰을 끌어내는 일이다.
물속과 사람 마음을 이해하려는 노력이 끝이 없듯, 전력망을 이해하려는 시도 역시 계속될 것이다. 완벽한 시뮬레이션은 존재하지 않지만, 불완전한 지도를 통해 현실을 이해하려는 시도는 오늘의 전력망을 미래로 이끄는 가장 인간적인 길일지 모른다. 기술의 발달로 언젠가 지금의 전력망 지도도 제국의 지도처럼 잊히고 새로 그려지겠지만, 그 과정에서 축적된 수많은 시도와 오류의 기록은 ‘에너지 고속도로’와 ‘차세대 전력망’을 떠받치는 든든한 밑거름으로 남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