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원=국제뉴스) 김만구 기자 = 5년간의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트럼프 대통령의 마두로 베네수엘라 대통령 체포 등은 국제사회 전반에 신(新)제국주의에 대한 우려를 낳고 있다. 이러한 시대적 상황 속에서 최근 경기도가 반입한 안중근 의사의 유묵 '장탄일성 선조일본(長呑一聲 先照日本)'이 던지는 메시지는 선명하다. 박래혁 경기도문화체육관광국장은 "선조일본은 오늘의 일본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당시 동아시아를 잠식하던 제국주의를 정조준한 선언"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안 의사의 유묵 '독립'이 대한민국의 역사라면, '선조일본'은 세계 질서에 던지는 질문'이라는 김동연 지사의 인식이 최종 반입이라는 결단으로 이어졌다"고 전했다. 김 지사가 위작 논란을 거쳐, 적지 않은 금액을 들여 이 유묵의 반입을 결정한 이유다. '선조일본'은 단순한 항일 문구가 아니라, 제국주의의 말로를 예견한 사상적 선언이다.
- 안중근 의사 유묵 반입을 처음 추진하게 된 계기는 무엇입니까?
"지난해 초 광복 80주년을 맞아 독립기념관 조성을 논의하는 과정에서 전시물을 검토했고, 그 일환으로 안중근 의사의 유묵 반입을 결정했습니다. 조사 과정에서 '장탄일성 선조일본(長歎一聲 先弔日本)'을 매입하기로 한 것이죠."
- '선조일본'은 생소한데 그 유묵의 존재를 이미 알고 있었는지요?
"노무현 정부 시절, 안중근 의사 유해 찾기 운동 당시 KBS 소속이던 김광만 PD님이 발굴해 냈죠. 김 PD님이 과거 리순감옥에서 일했던 청소부, 간수와 승려들을 탐문해 안 의사 유묵 '독립'과 '장탄일성'을 존재를 확인했습니다. 독립은 승려에게 전해져, 지금은 류코쿠 대학이 보관하고 있고, 선조일본은 식민지 권력의 중심부에 있던 관동도독부 고위 관료 출신 인사가 안 의사에게 직접 받아 갔죠."
- 관료 가족이 가정 내에서 보관하고 있었던 겁니까?
"'일본을 조문한다'는 표현은 패배를 전제한 선언으로, 제국의 공식 역사관과는 정면으로 충돌하는 내용이죠. 사실이 알려지면 큰일 나는 일인 거예요. 개인의 취미나 수집품이 아니라 정치적 해석과 책임의 대상이 될 수 있었죠."
- 그전까지는 이 유묵을 안 의사가 썼는지 일본 측도 몰랐던 겁니까?
"발굴된 지 20여 년에 불과해, 전문가들조차 소장 주체를 파악하지 못하고 있을 정도였습니다."
- 반입까지 한 6개월 걸렸나요?
"9개월 걸렸죠. 선조일본은 24억 원을 주고 구매했고, 독립은 소장자와 협상 중입니다."
- 선조일본에 대한 진위 논란이 불거지면서 반입에 어려움도 겪었다는데.
"반입 과정에는 예술의전당 서예박물관장을 지낸 이동국 경기도박물관장도 참여했습니다. 그는 국내에 반입돼 보물로 지정된 안 의사 유묵의 감정 평가에 거의 모두 관여한, 이 분야의 권위자입니다. '선조일본'의 진위를 둘러싼 논란을 정면으로 다뤄야 하는 상황에서, 그의 판단은 사실상 안전장치였죠. 하지만 진위여부 판단과정은 녹록지 않았습니다."
- 왜죠?
"통상 박물관이 미리 위촉해 둔 외부 자문위원 풀에서 3명을 선정해 감정을 합니다. 하지만 경기문화재단 대표이사께서 이번에는 공신력 있는 외부 기관에 맡기자고 제안했죠. 반면, 박물관 학예사 측에서는 "왜 통상적인 절차를 따르지 않느냐", "외부 기관에 맡기는 이유가 무엇이냐"는 문제를 제기했고, 결국 박물관을 포함한 3개 기관, 9명의 감정위원이 참여하는 대규모 감정이 진행됐습니다. 8명의 감정위원이 '진품'이라는 판단을 내렸는데, 박물관 측 자문위원 한 명이 '위작의심'의견을 내면서 논란이 빚어졌죠."
- '위작 의심' 의견에는 구체적인 이유가 있었을 텐데요?
"세 가지인데 첫째 안 의사의 직인 중 네 번째 단지가 약간 길다. 둘째 글씨가 전반적으로 우상향해 안 의사의 필체나 서풍이랑 맞지 않는다. 셋째는 '1910년 동양지사 안중근'이라는 표현인데, 지금까지 발굴된 유묵에는 모두 '경술년 대한국인 안중근'이라고 적혀 있어 '동양지사'라는 표현을 쓴 전례가 없다는 점이었습니다."
- 일리 있는 지적이네요.
"그래서 안 의사 유묵 약 60점에 남아 있는 지문의 형태를 하나하나 비교했습니다. 번짐의 정도, 종이의 재질, 먹의 농도에 따라 지문의 길이가 달랐기 때문에, 길이만으로 진위를 판단하는 것은 무리라는 결론에 이르렀습니다. 다만, 지문 감정 결과 손가락 전체의 형태와 손주름까지 포함해, 지문이 정확하게 일치했어요. 지문 위조 가능성도 검토했지만, 위조하려면 기준이 되는 더 선명한 지문이 있어야 합니다. '선조일본'에 남아 있는 지문은, 현재 확인된 유묵 가운데 가장 선명해, 위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판단했습니다."
- 다른 유묵에는 동양지사라는 표현이 없는데요?
"안 의사 유묵 약 60점은 '대한국인 안중근'이라는 서명이 남아 있죠. '장탄일성'에는 '동양지사 안중근'이라고 적혀있습니다. 8명의 감정위원은 오히려 이 지점에서 희소성을 부여했죠. '대한국인'이라는 표현이 쓰인 유묵들은 대부분 승려나 청소부, 감옥 관계자처럼 개인적 인연을 맺은 이들에게 건네진 것이었습니다. '선조일본'이라는 선언을 일본 제국의 핵심부에 있는 인물에게 써주면서, 자신을 '대한국인'으로 한정하는 것은 안 의사답지 않았을 것입니다. 이 유묵은 1910년 초, 사형 집행 직전 작성된 것으로 추정되며, 당시 안 의사는 '동양평화론'을 집필하고 있었습니다. 감정위원들은 이 점을 들어 '선조일본'이 기존에 발굴된 유묵과는 결이 다른, 국보급 가치를 지닌 작품이라고 평가했습니다."
- 우상향에 대한 문제도 제기했는데.
"서체는 정확하게 안 의사 유묵과 일치하고, 타 유묵도 약간씩 우상향하는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 종이 연도도 파악했는지요?
"용지 일부를 훼손해 점검해야 하는데, 구입여부가 확정되지 않은 상황에서 할 수 없었습니다."
- 안 의사 글씨체의 특질은 어땠나요?
"대한민국 언론원 김향동 교수는 안 의사 특유의 '칼맛'이라고 표현했습니다. 획이 지나가는 순간의 힘, 멈칫함 없는 단절, 팔의 각도, 힘이 실리는 순간, 평생 반복된 습관이 한 획에 동시에 드러난다고 했어요. 의식적으로 흉내 낼 수 있는 영역이 아니라는 겁니다. 흉내를 내려는 순간, 오히려 망설임이 생기고 그 주저함이 획에 그대로 남는다고 했죠."

최종 진위 판단에는 대한민국 예술원 서예 분야 권위자인 통일부 장관을 지낸 김영호 전 장관도 참여했다. 여기에 인사동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화랑의 관장, 문화재청 문화재위원회 현직 위원 등 각 분야의 핵심 인사들 7명이 합류했다. 1차·2차 감정 결과, 지문 분석, 소수 이견과 그에 대한 반증까지. "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은 중국에서 발간된 안 의사 관련 서적에는 '선조일본' 유묵이 이미 사진 감정을 통해 진품으로 분류돼 있었습니다. 한국에서는 실물을 두고도 논란이 있는데, 중국에서는 이미 사진만으로 결론이 나 있었다는 게 오히려 신기했어요."
- 결론 직후 곧바로 매입했나요?
"문화재단에서 한 명의 위원이 반대했기 때문에 매입을 못 하겠다고 했습니다. 당초 문화재단 기본재산으로 구입할 계획이었는데, 경기도 예산으로 전환하면서 도의회를 다시 설득해야 했죠. 감정위원 '한 명의 반대'는 도의원 '다수의 부정'으로 이어졌어요. 우리는 KBS '진품명품'에 출연하는 감정가들, 대학 교수, 타 박물관 관장 등 민간·공공·학계를 아우르는 최고 권위자들이 참여한 검증 자료를 제출했고, 그제 서야 진품으로 인정받을 수 있었습니다."
- 반입 당시 정부와 공동 추진할 계획은 없었나요?
"반입 생각만 했지 협의를 고민한 겨를이 없었고, 추진과정도 매우 조심스럽게 진행됐어요. 외부에 알려지는 순간 반입이 힘들어질 수도 있어서 최소 인원으로만 착수했죠."
- 국보 지정 요청을 할 계획인지요?
"국가문화유산으로 신청하면 지정까지 3년 걸린다고 해서 조만간 신청할 계획입니다."
'선조일본'은 현재 경기도 박물관 특별전시실에 전시돼 있다. 이곳에는 광무황제(고종) 사진, 명성황후가 쓴 옥골빙심, 명성황후 민자영의 19세기 말 사진, 1909년 3월 혈서로 쓴 안중근의 엽서, 1910년 2월 여순 감옥에서 안 의사가 남긴 유묵 '독립', 만해 한용운이 남긴 '조선 독립의 서(書)', 안 의사의 '동양평화론'과 일본 제국주의를 반대하는 무정부주의 지도자 고토쿠 슈스이의 사진 등이 함께 걸려있다.
- 최근 경기도 박물관을 방문했더니 메이지 시대 사회주의자 '고토쿠 슈스이' 사진이 전시돼 있어서 인상적이었습니다.
"그는 제국주의를 반대하는 무정부주의 사상가였습니다. 천황 암살을 꾸민 '대역사건'의 주모자로 다른 11명의 동지와 함께 처형당했죠. 안 의사가 이토히로부미를 저격한 것은 일본 제국주의에 대한 경고와 멸망의 선언이었는데, 슈스이가 천황 암살 모의 혐의로 체포되었을 때, 그의 소지품 중에서 안 의사의 의거를 칭송하는 한시가 실린 엽서가 발견됐어요. 그가 직접 쓴 시로 가슴속에 품고 다녔다고 합니다."
박 국장은 안 의사의 유묵 반입의 의미에 대해 "안 의사는 이토 히로부미 개인을 증오해서 방아쇠를 당긴 것이 아니다. 그가 겨냥한 것은 제국주의 그 자체였고, 제국주의는 결국 자기 파멸을 거쳐 가해자와 피해자를 가리지 않고 인류 전체를 파괴할 것이라고 보았다"고 답했다.
기자가 우크라이나 전쟁과 트럼프 대통령에 의한 마두로 베네수엘라 대통령 체포 사례 등은 국제사회 전반에 '신제국주의'라는 문제의식을 다시 부각시키고 있다고 하자 "안중근 하면 많은 이들이 먼저 떠올리는 이미지는 권총이다. 하얼빈역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대한의군 참모중장, 무장 독립운동의 상징이다. 그러나 김영호 전 통일부 장관은 그를 '동양지사'로 규정했다. '선조일본'은 증오의 선언이 아니라 사상적 경고였다. 안 의사는 '동양평화론'에서 힘의 균형이 아닌 협력의 구조, 일방의 지배가 아니라 공동의 질서를 언급했다. '장탄일성'은 과거의 분노를 기록한 문장이 아니라 폭력의 시대를 통과한 이가 남긴 경고이자, 폭력 이후의 세계를 향한 외침이다. 오늘의 국제 정세에 던지는 메시지가 크다"고 했다.

'선조일본' 반입의 시작과 끝에는 김 지사의 판단이 있었다. 김 지사는 "반드시 우리가 들여와야 한다"고 강조했다.
- 처음 반입을 김 지사가 지시했나요?
"지사님 판단이었습니다. 공무원들로서는 부담이 클 수밖에 없었죠. 의미가 크더라도 논란이 된 문화재를 적지 않은 공적 예산으로 매입하는 일은 조심스러운 사안입니다. 문제가 생기면 책임은 고스란히 행정의 몫입니다. 지사님은 진위 논란과 감정 절차, 도의회 설득 과정까지 실시간으로 보고받으며 매번 같은 결정을 내렸습니다. 국내 '반입'을 철저를 지시하셨죠."
- 김 지사 역시 가격이나 진위논란에 대한 부담이 있었을 텐데요?
"인상적이었던 것은 지사님의 가치 판단의 방향이었어요. 실무진은 처음 두 작품을 봤을 때, 널리 알려진 '독립'에 더 큰 비중을 두고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선조일본'을 뒤에 놓는 인식이 강했습니다. 비중으로 치면 '독립'이 70, '장탄일성'이 30 정도였죠. 그러나 지사님의 시선은 달랐습니다. 두 유묵을 국가 내부의 상징과 세계를 향한 메시지로 구분하며, '독립'이 대한민국의 역사라면, '선조일본'은 세계 질서에 대한 질문이라고 하셨죠."
박 국장은 "안 의사의 유묵 독립 반입도 추진하고 있고, 지사님이 일본인 소장자측에 친필 서한도 보냈다"고 했다. "잘 간직해주셨다. 한국에 돌려달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