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오는 날 거리에 방치된 우산을 보게 된 에이트린 정우재 대표는 문득 폐우산의 분리수거 방식에 대해 궁금증을 품게 되었다. 단순한 호기심은 곧 ‘소재를 하나로 통일한 우산’이라는 아이디어로 이어졌고, 지속 가능한 친환경을 꿈꾸는 브랜드 ‘에이트린’의 출발점이 되었다.
버려지는 우산에서 얻은 아이디어로 순환경제를 실현하고 있는 에이트린 정우재 대표와 인터뷰를 진행했다.

Q. 창업 계기와 브랜드 ‘에이트린’에 대해 소개해 주세요.
비 오는 날 길을 걷다 보니까 버려진 우산이 너무 많더라고요. 제가 호기심이 많은 편이라서 ‘이걸 재활용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지?’라는 의문이 생겼는데, 찾아보니 분리수거를 하는 데 30분 이상 걸리고 연간 버려지는 우산이 4천만 개라는 걸 알게 됐어요. 그때 ‘소재를 하나로 통일하면 어떨까?’라는 생각이 들었고, 그게 에이트린의 출발점이 됐습니다.
‘에이트린’이라는 브랜드 이름은 숫자 8과 ‘Green’의 합성어예요. 8을 눕히면 뫼비우스의 띠 모양이 되잖아요. 무한대를 의미하는 뫼비우스의 띠 모양처럼 친환경이 끊임없이 순환되었으면 하는 바람을 담았어요.
Q. 창업 초기 가장 어려웠던 점은 무엇이었습니까?
처음 시작할 때가 제일 어려웠어요. 제가 경영학을 전공했고 은행권에서 종사했다 보니 우산을 만들겠다는 아이디어는 있는데, 구현해 낼 수 있는 기술이랑 네트워크가 없었거든요. 비전공자라서 외주로 제품을 만들다 보니 통제되지 않는 부분이 많아서 예상보다 시간이 오래 걸렸고, 제품 내구성 문제가 생기기도 했어요. 물건을 만들어서 파는 사업인데 물건이 없다 보니까 그 물건 만들기 전까지가 좀 힘들었던 것 같아요.
처음에는 맨땅에 헤딩하듯이 플라스틱 사출, 금형 공장에 일일이 연락해서 아이템을 설명해 드렸더니 전부 거절하셨어요. 서울, 경기도권 공장을 아무리 찾아다녀도 적합한 곳을 못 찾다가 대전에서 지금 함께하고 있는 공장을 만났죠. 아무것도 모르는 상황에서 창업 세계에 뛰어드는 과정이 가장 어려웠던 것 같습니다.

Q. ‘현실적인 친환경’을 강조하신 이유가 궁금합니다.
지금 시중에서 판매되고 있는 친환경 우산은 대부분 5만 원에서 20만 원 사이예요. B2C 채널에서는 환경에 관심이 많은 일부 소비자만 접근할 수 있는 가격대죠. 하지만 진짜 친환경은 환경에 관심이 많지 않은 소비자들도 부담 없이 쓸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저희 제품은 재구매율이 높은 편이라 일단 고객에게 경험을 제공하는 게 중요하다고 판단했어요. 고객의 접근성을 높이기 위해서 장마철 프로모션이나 할인 행사 등 ‘가격 경쟁력’ 측면에서 접근하고 있습니다.
우산의 분리배출이 쉽도록 소재를 PP(폴리프로필렌) 하나로 통일했고, 전체의 30~50%는 재생 플라스틱을 활용하고 있는데요. 덕분에 우산 1개당 탄소 770g 절감 효과를 내고 있어요. 보통 친환경 제품이라고 불리기 위해서는 환경표지인증을 받아야 하는데 저희 제품이 국내 우산 최초로 환경표지인증을 진행 중이에요. 디자인도 꾸준히 개선해서 GD인증도 받았고, 품질 테스트도 모두 통과했어요. 단순한 제품이 아니라 ‘고치고, 고쳐서 오래 쓰는 구조’라는 점이 저희의 경쟁력입니다.
Q. 다양한 고객 참여형 활동도 인상 깊습니다.
맞아요. 우선, 매달 1일을 ‘에이트린 데이’로 정해서 고장난 에이트린 제품을 무료로 고쳐드리고 있습니다. DIY 수리 키트 개발을 계속 이어 나가면서 누구나 쉽게 자신만의 우산을 만들 수 있도록 하고 있고, 키트를 기반으로 우산 업사이클링 조립 체험도 진행하고 있습니다.
우산에 원하는 로고나 그림을 커스터마이징할 수 있고, 섬유펜으로 직접 그림을 그릴 수도 있어요. 조립부터 디자인까지 직접 할 수 있게 해서 세상에 하나뿐인 ’반려 우산’이라는 인식을 심어주고 있죠. 이 외에도, 공유 자전거처럼 QR코드를 찍고 우산을 대여하는 ‘공유 우산 서비스’도 진행하고 있는데, 이런 사업들이 조금 더 알려져서 버려지는 우산이 줄어들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여러 ESG 파트너십 캠페인을 진행 중인 에이트린[출처:에이트린]](https://www.casenews.co.kr/news/photo/202506/18123_39595_5237.jpeg)
Q. ESG 파트너십 캠페인도 활발히 운영 중이라 들었습니다.
SK이노베이션, 이천시, 한국보건의료연구원, 한국수자원공사 등과 파트너십 제휴를 통해 다양한 ESG 사업을 진행해 왔어요. 최근에 마스턴투자운용과 ‘업사이클링 캠페인’ MOU를 체결했습니다. 한 달에 한 번 병뚜껑을 수거한 후 업사이클링 우산을 만들어서 제공하고 있고, 절감된 탄소 배출량이나 폐플라스틱 수치 등을 ‘ESG 리포트’로 제공해 드리고 있어요. 기업 입장에서 가치 있는 참여형 ESG 캠페인을 진행하는 동시에 ESG 성과를 수치화할 수 있다 보니 대기업들과 핏이 잘 맞았고, 협업 문의가 꾸준히 이어지는 것 같아요.
저희는 광진구 사회적 기업 네트워크 환경 분과에 소속돼서 환경적 측면 발전에 지속적인 노력을 기울이고 있기도 한데요. 기업·지자체와의 협업을 통해서 함께 순환 경제를 실현하는 동시에 ESG 역량 증진에 보탬이 될 수 있어서 감사한 마음입니다.

Q. 오프라인 현장에서 소비자 반응은 어떻습니까?
저희 제품은 오프라인 현장에서 반응이 더 좋아요. 친환경을 전면에 내세운 상품이다 보니 DDP나 박람회에서 제품을 직접 만져보고 튼튼하다는 이야기를 많이 하세요. 사실상 온라인은 아무리 여러 인증을 받아도 소비자가 직접 경험할 수는 없다 보니 제품에 대한 선입견이 있는데, 비대면의 문제를 극복할 기회가 오프라인인 것 같아요.
한 박람회 현장에서 제조업계 종사자분을 만났는데, 저희 제품을 한참 동안 살펴보시더니 ‘너무 잘 만들어서 걱정된다’라고 말씀하시더라고요. 저희 완제품 생산은 발달장애인 한 분이 모두 담당하실 정도로 조립이 쉬운데, 제조업 종사자 입장에서 봤을 때, 아이디어와 취지가 좋은데 구조가 단순하니까 주변에서 따라 할 것 같다고 걱정하셨어요. 이 말은 대량 생산을 했을 때 가격이 확 낮아질 수 있다는 의미인데, 저희가 R&D 사업을 포함한 여러 프로젝트를 기반으로 대량 생산을 준비하게 된 배경이기도 해요.
![에이트린의 콘텐츠 기반 브랜딩[출처:에이트린 유튜브 '느좋소' 갈무리]](https://www.casenews.co.kr/news/photo/202506/18123_39596_558.png)
Q. 콘텐츠 기반 브랜딩에도 힘을 싣고 계십니다.
결국은 인바운드 영업을 늘리기 위한 전략이죠. 저희 매출은 B2B/B2G 비율이 커요. 담당자분들이 저희 콘텐츠를 보다가 문의하시는 경우가 많거든요. SNS에서는 ‘우산 사세요’보다 ‘우산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방식’으로 접근하고 있어요. 최근에는 유튜브에 ‘비 오는 날 플레이리스트’를 업로드 했고, ‘메일함에 쌓인 탄소 이야기’ 카드 뉴스를 인스타그램에 게시하기도 했죠. 결국, 저희에게 협업을 문의하는 기업 담당자님도 소중한 한 명의 소비자니까요. 브랜드와 기업이 추구하는 가치가 동일하다고 느껴야 협업으로 이어지더라고요.
Q. 향후 목표와 계획은 어떻게 설정하고 계십니까?
단기적으로는 DIY 키트를 본격화하고, 대량 생산 체계를 구축해서 가격을 더 낮춰서 ‘현실적인 친환경’을 실현하고 싶어요. 지금보다 가격 경쟁력을 더 갖춘 후에 수출 계획도 있습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서는 우산처럼 쉽게 버려지고 재활용이 어려운 제품들을 지속 가능하게 바꿔 가는 솔루션을 계속 만들고 싶어요.
Q. 마지막으로, 창업자와 리더들을 위한 메시지를 전해주시기 바랍니다.
스타트업은 속도가 중요하다고 하잖아요. 저도 처음엔 사비까지 써가면서 빠른 속도로 달렸는데 돌아보니 속도가 전부는 아니더라고요. 제품 출시가 늦어지더라도, 시장이 제품을 받아들이는 시간도 필요하다는 걸 알게 됐어요. 지금 창업 중이신 분들도, 너무 조급해 하거나 서두르지 않으셨으면 해요. 때로는 기다리는 시간이 제품을 더 단단하게 만들더라고요. 같이 시도하고, 실패하고, 성장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