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 목표는 세상에서 사라지는 것

[ 월간환경 ] / 기사승인 : 2025-11-03 02:20:03 기사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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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블의 외관 전경
에이블의 외관 전경




안양의 한 오피스 건물 1층에 여느 곳과 다를 것 없어 보이는 카페가 있다. ‘에이블’이라는 이름의 이 카페는 들어서는 순간 조금은 독특한 곳이라는 걸 깨닫게 된다. 카페 모퉁이 모퉁이마다 진열되어 있는 제로웨이스트 제품들. 카페 한 편에 당당히 자리하고 있는 리필스테이션. 강요하지는 않지만 눈길을 끌 수 밖에 없는 제로웨이스트 제품을 누구나 편하게 차를 마시며 천천히 돌아볼 수 있는 에이블은 제로웨이스트 카페다.



Q. 에이블은 어떤 곳인가?



지금 당장 환경에 관심 없는 사람들도 자연스럽게 접근할 수 있는 제로웨이스트 카페다. 예전에는 ‘제로웨이스트숍’이 메인이었다면, 지금은 카페가 메인이다. 숍을 운영해보니까 제로웨이스트라는 것도 관심 없는 사람들에게는 소리 없는 아우성이더라. 그래서 고민하다가, 그냥 지나가다가 누구든 간에 ‘이건 뭘까?’ 하고 관심을 좀 더 가질 수 있게 자연스럽게 접근하는 것이 낫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운영 방식을 바꿔보았다.




에이블 박상환 대표
에이블 박상환 대표




Q. 처음부터 카페는 아니었던 건가?



처음에는 다른 분들처럼 제품들 막 쌓아놓고 쓰레기도 주우러 다니고 같이 하고 홍보도 하고 플리마켓 같은 데서 홍보도 열심히 하고 판매도 해봤는데 사람들이 ‘환경에 도움이 돼서’ 사는 것이 아니라 ‘아, 이거 우리 집에 있으면 좋겠다, 내가 쓰기에 좀 편하겠다, 이거 있으면 우리 아기가 좀 더 건강하게 살 수 있겠다’ 같은 생각으로 구매하더라. 환경 운동이 아니라 ‘건강한 생활’에 좀 더 관심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2, 3년 전만 해도 보통의 제로웨이스트숍과 같은 형태로 운영을 했는데, 이제는 조금 방식을 변경해서 좀 더 일반적인, 그러니까 ‘환경에 대한 관심이 덜한 사람’에게도 자연스럽게 ‘좋은 제품이다, 건강을 챙길 수 있고 좀 더 편리하다’라는 취지로 다가가려고 하고 있다.



환경 운동을 하는 사람들이 ‘환경을 지키기 위해서는 불편함을 감수해야 한다’라고 하는데, 사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요즘 시대가 그렇지 않다. 사람들이 불편한 것을 못 참는다. 불편을 감수하려면 우선 휴대폰부터 치워야 하는 데 쉬운 일이 아니다.



Q. 상호를 에이블이라고 지은 이유는?



원래는 제로 에이블이었다. 제로를 위해서 함께 노력하자는 의미였는데 환경 운동을 하는 분들 뿐 아니라 모두 함께해보자는 의미로 에이블로 바꾸었다. 이곳을 찾는 이들에게 ‘그냥 해보세요. 같이 해보시겠어요?’ 이렇게 제안을 드리는 거다. 리필 세제도 좋아요, 대나무 칫솔, 고체 치약도 괜찮아요. 한번 써보세요. 그냥 함께 하자고.




카페 한 편에 자리하고 있는 제로웨이스트 제품들
카페 한 편에 자리하고 있는 제로웨이스트 제품들




Q. 제로웨이스트나 환경 운동에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솔직히 말하자면 환경에 크게 관심이 없었다. 코로나 시기에 관심을 가지고 시작하게 됐는데 그때쯤 이상한 게 유튜브의 알고리즘에 환경 관련 영상이 계속 떴다. 그런 영상들을 계속 접하다 보니까 아이러니한 것들이 참 많더라. 그래서 나도 좀 뭔가 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했고, 제일 만만하게 접근할 수 있는 것이 제로웨이스트였다.



좀 더 쉽게 접근할 수 있고 환경에 대해 크게 공부하지 않더라도 시작할 수 있는 분야였다. 물론, 이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는 여러 대표님은 전문적인 분들이 많지만.



Q. 플로깅 같은 외부 활동도 많이 한 것으로 아는데.



모집을 몇 번 했었는데 처음에는 한 18명, 15명 이렇게 모였었는데 4회차, 5회차 되니까 3명, 2명, 한 명… 그렇게 줄어들더라. 한때 플로깅이 뜨면서 반짝 인기가 있었고, 대기업에서도 진행을 많이 했지만 결국에는 이게 쓰레기 줍는 것이 목적인 분들보다는 사은품이 목적인, 약간 보상 심리를 가진 분들이 많았다. 외부에서 하는 것이니 날씨 영향도 받더라. 여름에 너무 덥다. 거의 뙤약볕에 있을 때도 많다 보니까 수분 섭취를 지속해서 해도 온열질환의 위험성이 있고 겨울은 또 너무 추워서 손이 시려서 못 하고…. 자발적인 활동이니 내가 강요할 수도 없는 노릇이라서 지금은 거의 진행하지 않고 있다.



와이퍼스 활동 같은 것을 보면 요즘은 시내에서 하는 것보다는 바닷가나 축제 장소 같은 곳에서 큰 이벤트 형식으로 많이 하더라. 이제 플로깅은 개인적으로 하는 사람들이 더 많은 것 같다.



Q. 환경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사람과 떼어낼 수 없지 않나. 사람이 살아가는 데는 환경이 큰 영향을 미친다.



동물이 있기 전에 식물이 먼저 있고 동물들이 식물을 먹고 우리가 동물의 고기를 섭취하는 것처럼 식물이 있어야 사람도 살 수 있고 산소도 만들어지고, 먹고 입고 탈 것들을 만들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더 깨끗하게 지켜져야 하고 좀 더 훼손하지 않기 위해서 재활용을 해야 하는데 쉽진 않다.



Q. 제로웨이스트 관련 종사자들이 정책적으로도 목소리를 많이 내는 것으로 알고 있다.



솔직히 말하면 이제 정책 쪽으로는 크게 기대하지 않는다. 지금 제로웨이스트 중에서 가장 큰 현안인 리필 세제에 대한 문제가 아직도 해결되지 않았다. 내가 이 업계에 들어오기 전부터 간담회가 있었고 환경부에서도 적극적으로 추진했지만 그 기준이 지금의 상황과 맞지 않는 법률에 있어서 어려움이 많다. 제로웨이스트숍을 운영하는 사람들이나 직접적으로 체험하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는 전혀 반영되지 않고 옛날에 제정된 법을 기준 삼는다면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는다.



일례로 리필 세제의 용기 문제는 어린아이들이 세제를 먹는다거나, 비누를 먹는 일이 흔했던 1980년대를 기준으로 법이 계속 규제를 가하고 있다. 현장에서 실질적으로 더 환경적이고 활용도가 높은 용기 소재를 제시해도, 법률을 근거로 적용되지 않는다.



간담회를 해도 법률 개정을 위해 노력하고 싶어도 환경부를 비롯한 식약처 등 각 관계 부처는 자신들의 소관이 아니라고 돌려대기 바쁘다. 그러니 다들 지쳐서 참여 자체를 안 하게 되는 것이다. 정책을 발표해봤자, 현장의 목소리가 빠진 탁상행정이니 환경에는 크게 도움 되지 않고 기업이나 표심만 좌우하는 거다.



나도 이제는 내려놓고 어떻게 하면 좀 더 사람들에게 친숙하고 친밀하게 다가갈 수 있을까만 생각한다. 정책에 대해서는 딱히 기대하는 바가 없다.



코로나 시국 전에 환경부에서 일회용 제품 사용 제재를 시도했다가 코로나가 닥치면서 일 보 후퇴하기도 했다. 플라스틱 컵을 쓰지 말자는 목소리가 커지고 이는 물론 맞는 말이지만 강압적으로 적용해서는 안 된다. 서로에 대한 합의점을 찾아 시간을 들여 충분히 적용해야 한다. 환경 운동은 결국 화합이다. 환경만 생각해서는 안 되고 동식물을 생각하는 것처럼 사람과도 화합을 해야 하는데, 정책을 시행할 때는 그런 과정들이 있어야 한다.



당장 핸드폰 쓰지 말라고 해서 못 쓰는 상황이 안 되지 않나. 일회용 컵과 같은 것은 우리 실생활에 이미 많이 근접해 있는 만큼 다양한 방법을 좀 더 다 같이 생각해야 하는데 한쪽 말만 듣고 강압적으로 밀어붙이면 안 된다.



결국에는 사람이 사용하는 것이고 그것을 줄이기 위해서 제로웨이스트 운동을 하는 것이라는 걸 잊지 말았으면 한다.




카페 한 편에 자리하고 있는 제로웨이스트 제품들
카페 한 편에 자리하고 있는 제로웨이스트 제품들




Q.이곳을 찾는 사람들에게 어떤 장소가 됐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나?



카페에 와서 차 한 잔 마시면서 그냥 이런 물건이 있다라는 것을 좀 편하게 구경하고 가셨으면 좋겠다. 제로웨이스트라고 해서 환경 운동에 관심 있는 사람뿐 아니라 그냥 이런 제품들이 있구나, 이런 걸 쓰면 환경에 좀 도움이 될 수도 있겠구나 같은 조그마한 상식이라도 가져갔으면 한다. 무조건 환경 운동해야 해, 이거 무조건 써 이러면 인간으로서 본능적으로 거부감이 들게 마련이다. 거부감 없이 그냥 구경하다가 고체 치약 같은 것들을 쓰면 이런 게 도움이 되는구나 생각하게 되고 그런 식으로 경험이 쌓이다 보면 나중에 인지도 있는 데 가서 좀 더 다양하게 구경할 수 있는 안목을 높일 수 있고 자연스럽게 환경 운동에 대한 관심이 더 커지지 않을까 한다. 나는 그 발판을 마련하고 싶다.



방법론적인 문제다. 차를 마시러 왔다가 제품을 사가는 경우가 은근히 많다. 일단 커피를 마시러 와서 제품을 구경하다가 마음에 들면 구매하는 것이다. 일단 ‘보였으니까’. 그래서 카페인데도 친환경 제품도 은근히 팔린다. 커피를 마시러 와서 제품을 구경하다가 고체 치약을 써봤던 손님이 옆 좌석의 일행에게 고체 치약에 관해 설명한다.



전에 있던 매장에서는 내가 다 일일이 설명해드리고 이런 제품이 좋다고 구구절절 설명했었는데 지금은 개입하지 않고 그냥 놓아만 두면 구경하던 손님 곁의 일행이 야, 이거 괜찮더라 하면서 추천하는 자연스럽게 구매가 이어지는 현상이 발생하고 있다.



Q. 그런 일들이 경영에 도움은 되는가?



어느 정도는 효과를 봤다고 생각한다. 전에는 그냥 구경하러 왔다가 가시는 분들이 많았다. 그런데 카페와 함께 운영하면서부터는 여기서 커피를 마시면서 이 제품이 정말 나한테 필요한가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을 제공하게 되었다. 소비자는 이 제품이 자기한테 정말 필요한가, 이게 내가 쓸 수 있는 건가를 생각하고 따져볼 수밖에 없다.



환경을 생각해서 무조건 구매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잘 쓸 수 있는 제품을 구매해야 재구매로도 이어진다. 제로웨이스트숍도 이윤을 추구해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지속 가능한’ 것은 환경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생활 역시 지속 가능해야 한다. 이윤을 배제한 환경만 생각한 탓에 많은 분이 업계를 떠났다.



지속 가능한 환경 운동은 지속 가능한 삶과 함께 가야 한다.



Q. 에이블의 궁극적인 목표는 무엇인가?



솔직히 제로웨이스트숍 운영하시는 분들은 똑같은 생각을 하고 있다. 결국 우리 같은 제로웨이스트 매장이 없어지길 원하는, 그냥 자연스럽게 전 세계적으로 재활용을 똑바로 하고 업사이클링이 제대로 이루어지는, 굳이 우리가 없어도 되는 사회를 원한다.



이것이 제로웨이스트숍 대표들의 공통적인 목표인 것 같다. 우리 같은 사람들이 없어져야 한다. 지금 목표는 제로웨이스트에 관심이 없는 분들이 그냥 자연스럽게 관심을 가지도록 하는 것인데 결국 궁극적인 목표는 나 같이 생각하는 사람이 없어지는 것이다. 환경 오염도 사라지고, 자연히 모두가 환경을 생각하게 된다면 우리가 할 일이 없을 것이다.




카페 한 편에 자리하고 있는 제로웨이스트 제품들
카페 한 편에 자리하고 있는 제로웨이스트 제품들




Q. 앞으로의 에이블은?



제로웨이스트나 환경 운동에 대한 관심이 한풀 꺾였다. 이전처럼 좀 더 환경에 대한 관심을 가지고 좀 더 다양한 활동을 재개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많은 대표님이 업계를 떠나서 단체 플로깅도 못하게 되었고, 예전 같은 활발한 활동도 줄었는데 그때처럼 다 같이 재미있게 환경 운동을 할 수 있는 날이 오기를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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