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초려 이유태(1607~1684) 선생은
사계 선생의 '고제3현' 으로
북벌(北伐)을 도모한 효종으로 부터
두 차례 '북벌밀지' 를 받았던 조선 중기
산림을 대표하는 '충청5현' 으로

현종 15년 간
선비로선 최고의 예우를 받았던
경세사상가로 널리 알려졌다.
율곡 이이의 경세치용과
사계 김장생 선생의 예학정신을
계승, 발전시킨 '기호사림' 을 대표하는
선비며 학자로 더 유명하다.

남명 조식의 '무진봉사' 와
율곡 이이의 '갑술봉사'와 더불어
개혁을 통한 국정쇄신 대개혁을 주창한
초려의 기해봉사(己刻封事)는
임병양란 이후
'국가가 있어도 없는 것과 같다' 고 진단하고
'성인이 제정한 법도
그 폐단이 드러나면 반드시 고쳐야 한다' 는
실학과 경세사상으로

국정혁신 대개혁을 통한
북벌을 단행하여 민생을 구제하고
부국강병을 통한
천하의 정의를 구하고자 했다.
기해봉사는 설폐론과 구폐론
그리고 군덕론으로 나뉘며
구폐론은 설폐론에서 지적한
폐단을 구제하기 위한
구체적 방책을 따지고 제시했다.

이는 국정전반에 대한 포괄적 개혁안으로
풍속을 바르게 하고
세상의 인재를 널리 구하며
오랜 폐습을 없애는 3대 강목으로 삼고
그 아래 16조목을 설정해
구체적이고 혁신적인 개혁을 주창했다.
기해봉사는 당시의 국정을
실공과 실효의 결여로 진단하고
진실한 노력이 결여됨으로서
야기되는 폐단을 일곱 가지로 진단했다.
그 중심엔
늘 민생과 민본을 최우선으로 했고
바른 왕도정치의 실현을 꿈꿨다.
~ 제 11회 세종특별자치시 향토사 대회,
서원의 기능과 역할(갈산서원을 중심으로)
발제를 준비하면서.
이연우 초려문화재단 이사장
청명한 하늘과 푸른 나무 아래서 한국의 대표적 지성문화인 유교문화를 계승하고, 맥과 정신을 잇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그는 자연 가까이 머물면서 새로운 에너지를 얻고, 창조적인 삶을 만들어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