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원초적이면서도 본능적인 조리법인 '직화구이'가 수 세기가 지난 오늘날까지도 우리 식탁의 한 켠을 굳건히 지키고 있다.

KBS '한국인의 밥상'은 검게 그을린 자국 안에 피어난 훈연의 향, 그 단순한 조리법으로 식탁을 풍성하게 해주는 뜨거운 맛을 찾아 전국 각지의 직화구이 명인들을 만났다.

연탄불에 고소하게 구워지는 생선, 숯불에 지글지글 구워지는 고기 등 불에 음식을 굽는 직화구이는 인류 최초이자 어찌 보면 가장 단순한 조리법이다.

그러나 어떤 땔감을 이용하느냐, 또 어떻게 굽느냐에 따라 각기 다른 맛과 향을 내며 '훈연 효과'라는 독특한 조미료를 더한다. '한국인의 밥상'은 이처럼 땔감 자체가 하나의 조미료가 되는 한국인의 전통적 직화구이에 담긴 옛사람들의 지혜와 이야기를 깊이 있게 조명했다.

무안 몽탄면, 액운 막고 풍년 기원하는 '짚불구이'

영산강 하구의 비옥한 땅 덕분에 벼농사를 주업으로 삼았던 무안군 몽탄면에서는 추수가 끝난 후 볏짚을 태워 음식을 구워 먹는 풍습이 전해진다. 이는 볏짚을 태워 액운을 막고, 타오르는 불처럼 풍년이 들기를 기원하며 먹었던 음식, 바로 '짚불구이'다. 명절이면 온 가족이 둘러앉아 구워 먹던 짚불 삼겹살과 친구들과 함께 즐기던 생선구이는 고기와 생선 속에 깊숙이 밴 짚불 향으로 몽탄면 마을 사람들에게 잊을 수 없는 추억의 맛으로 기억된다.

특히 짚불구이는 여럿이 힘을 합해야만 먹을 수 있는 음식으로, 누군가는 짚불을 피우고, 누군가는 볏짚이 타는 동안 새 짚을 넣어주고, 또 누군가는 고기를 굽는 등 공동체 문화가 고스란히 녹아있는 것이 특징이다. 다 함께 씨를 뿌리고 수확을 해온 농경사회의 공동체 문화가 그대로 담겨 있는 짚불구이는 무안의 특산물인 칠게를 갈아 만든 칠게장과 함께 몽탄면 주민들이 함께 만들어낸 특별한 한 상을 완성했다.

봉화, 50년 노하우로 지켜온 '솔잎 숯불구이'

금강소나무의 자생지로 유명한 경상북도 봉화에서는 예로부터 소나무를 베어 아궁이에 불을 지피고 음식을 구워 먹었다고 한다. 여기에서 유래한 이 지역만의 특별한 구이가 바로 '솔잎 숯불구이'다. 소나무 숯으로 고기를 굽고 솔잎으로 향을 입히면 그윽한 솔향이 고기에 배어들어 특별한 불맛을 선사한다.

이 특별한 불맛을 50년째 지키고 있는 김문영 사장은 쉽게 불이 붙는 소나무 숯의 특성상 불 조절이 관건이라고 전했다. 그의 노하우는 바로 '부채질'이었다. 부채질로 불을 껐다 지폈다 반복하며 돼지고기에 소나무 숯향을 입히고, 마지막으로 접시에 담기 전 솔잎을 넣어 한 번 더 솔향을 입히면 은은한 솔향이 담긴 돼지 숯불구이가 완성된다. 최근 소나무 장작으로 불을 지피는 집들이 사라지면서 소나무 숯 구하기가 점점 힘들어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김 사장은 고향 사람들이 그리워하는 맛을 지키기 위해 소나무 숯을 고집하고 있다. 자신을 태워 숯불을 피우는 소나무처럼, 평생 자신의 청춘을 태워 자식들의 울타리가 되어온 김문영 사장의 솔향 가득한 인생 이야기가 시청자들에게 깊은 울림을 주었다.

광양, 천하일미 '참숯구이'의 명성

백운산을 병풍처럼 두르고 있는 도선국사마을의 이순심 씨는 숯불을 피울 때마다 숯 지게를 지고 집을 나서던 부모님의 모습을 기억한다고 전했다.

그 옛날 부모님은 장터에 나가 숯을 팔아 소금이며 쌀, 간갈치 등을 사 오곤 했다. 백운산의 참나무를 구워 만든 숯은 일반 숯보다 단단하고 탄소 함유량이 높아 오랫동안 일정한 온도를 유지하는 것이 특징이다. 참숯으로 음식을 구우면 잡내를 흡수해 재료 고유의 맛을 살려내는 효과가 있다.

덕분에 광양에서는 예로부터 다양한 참숯구이가 발달했는데, 그 대표적인 음식이 바로 '광양 숯불고기'다. 조선시대 광양으로 유배를 갔던 선비가 한양으로 돌아가서도 그 맛을 잊지 못해 광양의 옛 지명인 '마로(馬老)'를 따서 '천하일미 마로화적(天下一味 馬老火炙)'이라 칭했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이와 함께 서민들의 음식이었던 '숯불 닭구이'까지, 참숯이 선사하는 특별한 맛과 그 안에 담긴 역사와 이야기가 시청자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