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00안타는 너무 먼 얘기, 지금처럼 매일 치열하게만” ‘최다안타 신기록’ 손아섭이 지목한 후계자는?

[ MK스포츠 야구 ] / 기사승인 : 2024-06-21 05:49:01 기사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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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C 다이노스 베테랑 외야수 손아섭이 개인 통산 2,505안타로 박용택 위원(2,504안타)을 넘어 개인 통산 최다 안타 신기록을 달성했다. 이제 전인미답의 3,000안타 도전도 가능해진 가운데 손아섭은 최다 안타 기록을 쫓아올 후계자로 KT WIZ 강백호를 꼽았다.

손아섭은 6월 20일 잠실 두산 베어스전에서 2번 타자 지명타자로 선발 출전했다.

이날 앞선 두 타석에선 땅볼과 삼진에 그쳤던 손아섭은 6회 초 2사 뒤 세 번째 타석에서 상대 선발 투수 알칸타라와 맞붙어 볼카운트 1B-2S 상황에서 6구째 133km/h 포크볼을 공략해 라인 드라이브성 좌전 안타를 날렸다. 2,505안타로 개인 통산 최다 안타 신기록 달성의 순간이었다.





데뷔 첫 안타를 2007년 4월 7일 수원 현대전에서 기록한 손아섭은 1,000안타(2015년 10월 2일 목동 넥센전)·1,500안타(2018년 7월 11일 포항 삼성전)·2,000안타(2021년 7월 10일 대구 삼성전) 기록을 차곡차곡 쌓아왔다. 특히 2,000안타의 경우 최연소(33세 3개월 22일)이자 최소 경기 기록이기도 했다. 그리고 손아섭은 첫 안타 이후 17년 2개월 13일 즉 6,284일만에 2,505안타 최다 안타 신기록 고지에 도달했다.

6회 초 이닝 종료 뒤 손아섭 최다 안타 신기록 축하 기념식이 진행됐다. NC 임선남 단장과 양 팀 주장이 꽃다발을 전달한 가운데 최다 안타 타이기록 보유자였던 박용택 해설위원도 잠실구장을 직접 찾아 손아섭에게 축하 꽃다발을 전했다.

NC 구단은 지름 35cm의 쟁반형 기념 트로피를 선물했다. 구단에서 디자인한 기록 달성 기념 엠블럼을 입체적으로 표현했다. 대한민국 최고의 교타자라는 의미에서 야구 배트와 소총을 결합해 X자로 교차해 표현했고, 배트 노브 부분에는 손아섭 배트의 상징인 테이핑과 왕(王)표시가 새겨졌다.

엠블럼 상단에는 배팅헬멧 안쪽에 부착해 화제가 되었던 과녁 표시를 형상화했다. 이는 최고의 타자가 되기 위한 손아섭의 끈기·노력·근성을 상징한다. ‘2505’ 숫자 뒤에 +를 추가한 건 신기록 달성 후 마침표를 찍지 않고 계속해서 본인에 의해 갱신될 숫자임을 의미한다.

다음은 최다 안타 신기록을 달성한 손아섭과 일문일답.



최다 안타 신기록 소감은?

실감이 나지 않는다. 일단 영광스럽다. 단지 팀도 이겼으면 더 기쁨이 컸을 텐데 패배한 부분이 아쉽다.

6회 초 신기록 달성 순간 감정은 어땠나.

이왕이면 빨리 달성하고 싶은 생각이었다. 시간과 싸움이지 무조건 달성한다고 생각했기에 오히려 부담감은 없었다. 그냥 6회 초 안타를 쳤을 때 실감이 안 났다. 신기록이라고 와닿지 않고 그냥 조금 멍했다 해야 하나. 순간 이게 뭐지라는 멍한 느낌이었다.

신기록이 잠실구장에서 나왔는데.

특정 구장을 굳이 생각한 건 아닌데 그래도 이왕이면 홈 구장이나 야구를 시작한 사직구장, 혹은 잠실구장 이런 곳에서 달성하고 싶긴 했다. 아무래도 큰 구장에서 하고 싶다는 생각이 있었다. 박용택 선배님도 최다 안타 신기록을 달성할 때 상대 팀으로 잠실구장에서 본 기억이 난다. 신기하게 나도 잠실구장에서 그 기록을 깨게 됐다.

커리어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안타는?

데뷔 첫 안타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데뷔 첫 안타를 역전 2루타로 때리면서 스타트를 잘 끊었던 게 지금까지 꾸준하게 올 수 있었던 계기였다.

첫 안타를 쳤을 때부터 이렇게 많은 안타를 칠 것으로 예상했나.

솔직히 이렇게 많은 안타를 칠 것으로 생각 못 했다. 그냥 하루하루 치열하게 살았던 시간이 모여서 지금 이렇게 대기록에 내 이름을 올릴 수 있었다.

박용택 위원이 손아섭 선수를 두고 완벽한 타자는 아니지만, 누구보다 모든 타석을 소중하게 여기는 타자라고 평가했다.

맞는 말씀이다. 소위 말하는 천재형 타자는 아니다. 누구보다도 간절함, 그리고 투수를 이기고 싶다는 치열함으로 경기에 임한 게 하나씩 쌓여서 여기까지 왔다.

박용택 위원은 전인미답의 3,000안타 도전도 응원했다.

숫자상 아직 너무 많이 남아서 너무 먼 얘기다(웃음). 사실 2,500안타를 칠 거라고 생각 안 했기에 오히려 여기까지 오지 않았나 싶다. 그런 걸 의식하면 타석에서 밸런스가 무너지고 욕심 때문에 역효과가 난다. 특정 숫자를 정해 놓기보다는 지금처럼 간절하게만 부상 없이 열심히 뛴다면 주위에서 바라는 그런 숫자가 나올 날이 올 수 있다고 생각한다. 지금은 그냥 한 경기 한 경기 모든 걸 쏟아붓고 싶다.



18년 커리어 동안 꾸준함을 보여준 비결이 무엇인가.

아침에 눈을 떠서 자기 전까지 항상 일정한 루틴을 지키려고 노력했다. 정신적으로 힘든 시간도 있었지만, 항상 똑같은 마음가짐으로 경기를 준비했던 게 그 비결이지 않나 싶다. 그리고 야구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 지는 모르겠지만, 술과 담배를 안 하고 탄산음료도 안 마시는 걸 계속 지켰다.

경험이 쌓이면서 스트레스를 스스로에게 주지 않고 관대해준 부분도 있나.

성격 자체가 예민해서 그런 부분은 안 바뀌는 듯싶다. 오히려 그런 게 지금까지 꾸준하게 야구를 할 수 있었던 원동력이라고 생각한다. 굳이 그런 걸 바꾸려고 하기보다는 초심을 잃지 말고 지금처럼 야구를 하고 싶은 마음뿐이다.

개인적으로 은퇴 시기에 대한 생각은 어떤가.

힘이 아직 남았고 팀에 도움이 된다면 할 수 있는 곳까지 최선을 다하고 싶은 마음뿐이다. 시기를 정하진 않으려고 한다. 그래도 1년에 150안타 정도는 쳐야 팀에 도움이 된다는 생각이 있다. 지금도 생각했던 이상으로 왔다. 남은 시간은 보너스라고 생각하고 유니폼을 벗는 날까지 초심을 잃지 않겠다. 나도 내가 어디까지 갈 수 있을지 사실 궁금하긴 하다.



지금 기억 나는 스승이 있다면.

너무 많은 스승들이 계신다. 정말 부족한 선수였는데도 기회를 주셨던 로이스터 감독님이 먼저 생각난다. 김무관 타격코치님도 신인 때 지금 내 스윙을 만드는 것에 큰 도움을 주셨다. 강인권 감독님도 부진할 때 끝까지 믿어주신 부분에 대해 정말 감사드린다. 마지막으로 허문회 감독님도 많이 생각난다. 야구적인 생각을 새롭게 바꿀 수 있도록 도와주신 분이라 확실히 기억에 많이 남는다.

최다 안타 기록을 위협할 후계자는 누구일까.

원래는 당연히 이정후 선수였는데 이제 미국으로 떠났다. 그다음은 김혜성 선수라고 생각했는데 또 미국을 갈 수 있지 않나. 그렇다면 강백호 선수가 타격적으로 완성형이고 어릴 적부터 1군 경기를 계속 뛰었기에 따라올 가능성이 가장 크지 않을까 싶다. 후배가 내 기록을 나중에 깬다면 박용택 선배님처럼 직접 축하해주면서 내가 선배님들에게 받은 사랑을 돌려주고 싶다.

어려움을 겪는 후배들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는?

일단 할 수 있는 곳까지 포기하지 않고 해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도 신체 조건이 크게 부족한 편인데 그런 부분을 극복하고자 정말 많이 노력했다. 작은 체격을 커버할 수 있는 스윙을 연구하면서 나만의 스윙을 만들 수 있었다. 쉽게 포기하기보다는 끝까지 준비하고 노력하면 언젠가든 빛을 발할 수 있기에 포기하지 않았으면 한다.

스스로 최다 안타 신기록의 의미를 다시 짚어본다면.

지금도 정말 내가 1등인지 실감이 안 난다. 고생하고 노력했던 시간이 있었는데 그게 조금이나마 보상받는 느낌이라 기분이 좋긴 하다. 물론 이게 끝이 아니지 않나. 앞으로 야구할 날도 많이 남는다. 몇 개까지 안타를 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오늘 안타를 마지막 목표까지 가는 하나의 과정이라고 보고 싶다.

잠실(서울)=김근한 MK스포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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