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밀린 월세, 시효 지나도 보증금에서 뺀다"

[ 국제뉴스 ] / 기사승인 : 2025-11-30 18:53:58 기사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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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정숙 변호사=법도 종합법률사무소
엄정숙 변호사=법도 종합법률사무소

(인천=국제뉴스) 이병훈 기자 = 소멸시효가 지나 더 이상 청구할 수 없는 밀린 월세(연체차임)라도, 임대차가 끝날 때 전세보증금을 정산하는 과정에서는 보증금에서 공제할 수 있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전세금반환소송이 빠르게 늘고 있는 요즘, 대법원 '2024 사법연감'에 따르면 2023년 1심 '임대차 보증금' 사건 접수는 7,789건으로 집계됐다. 2022년 3,720건에서 1년 만에 두 배 이상 증가한 수치이자, 2014년(7,012건) 이후 10년 사이 가장 많은 수준이다. 전체 민사 본안 사건(282,329건)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1.5%대(2022년)에서 2.8%대로 뛰었다.

30일 엄정숙 부동산전문변호사(법도 종합법률사무소)는 "전세금반환소송이 '돈을 돌려받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정확히 얼마를 정산해야 하느냐'의 싸움으로 바뀌고 있다"며 "이번 판결은 보증금 정산의 기준을 다시 짠 결정"이라고 말했다.

이런 흐름 속에서 대법원은 지난 3월 27일 선고한 2024다302217 판결(임대료 등 청구)에서, 부동산 임대차의 보증금은 임차인이 집을 인도할 때까지 발생한 임차인의 모든 채무를 담보하며, 임대인은 이 채무들을 공제한 나머지 금액만 반환하면 된다고 재확인했다.

이 사건에서 임차인은 오랜 기간에 걸쳐 여러 차례 계약을 갱신하는 동안 월세를 연체했고, 일부 연체차임은 3년 단기 소멸시효가 이미 지나 있었다. 임차인은 "시효가 끝난 월세는 이미 없어진 채권이므로, 전세보증금을 돌려줄 때 빼고 줄 수 없다"고 주장했고, 하급심도 이 논리를 상당 부분 받아들였다.

그러나 대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재판부는 임대차가 계속되는 동안 임대인이 보증금에서 연체차임을 곧바로 차감하지 않고 관계를 유지해 온 점, 임차인이 연체 사실을 알면서도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한 채 계약을 이어온 점 등을 종합해 볼 때, 양측의 묵시적 의사를 고려하면 소멸시효가 완성된 연체차임도 보증금에서 공제할 수 있다고 보았다. 민법 제495조(소멸시효 완성 채권의 상계)규정의 취지를 유추해 보증금 정산 단계에서는 연체차임을 반영할 수 있도록 길을 연 것이다.

정리하면, 임대인이 소멸시효가 지난 월세를 따로 소송으로 청구하는 것은 어렵지만, 전세계약이 끝날 때 보증금을 돌려줄 금액을 계산하는 과정에서는 그 연체분을 '빼고 계산'할 수 있다는 의미다.

이번 판결은 전세금반환소송 실무에도 곧바로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그동안은 임차인이 "연체차임의 시효가 지났다"며 전세금 전액을 기준으로 소송을 제기하는 사례가 적지 않았다. 임대인 입장에서는 과거 연체이력까지 모두 소송에서 다시 다투기엔 부담이 커, 시효 지난 월세를 포기하는 쪽으로 정산하는 경우도 많았다.

엄정숙 변호사는 "이제는 '시효 지났으니 없다'고 단순하게 볼 수 없고, 과거 연체이력과 계약 갱신의 경위까지 모두 들여다봐야 한다"며 "임대인이 연체차임을 보증금에서 공제할 수 있는 여지가 넓어지는 만큼, 전세금반환소송에서 실제로 돌려받는 금액은 임차인이 생각한 것보다 적어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엄 변호사는 "임차인 입장에서는 그동안 '그래도 보증금은 온전히 돌아오겠지'라는 기대가 있었는데, 이번 판결 이후에는 연체 이력이 있으면 그 부분까지 소송에서 다시 계산될 가능성을 염두에 둬야 한다"며 "임대인 역시 '보증금이 있으니 나중에 정산하면 된다'는 막연한 신뢰가 일정 부분 인정된 만큼, 처음부터 연체 관리와 계약 갱신 조건을 명확히 남겨야 불필요한 분쟁을 줄일 수 있다"고 말했다.

실무에서 전세금반환소송의 쟁점이 되는 금액은 결국 두 가지로 요약된다. 하나는 임대차 종료 시점까지의 연체차임과 관리비·수리비 등 각종 채무, 다른 하나는 이 금액들을 모두 공제하고 남는 보증금이다. 이번 판결로 소멸시효가 지난 연체차임까지 정산 범위에 포함될 수 있게 되면서, 실제 소송에서는 연체 내역을 입증하는 자료의 중요성이 더 커질 것으로 보인다.

엄 변호사는 "계약이 2~3차례 이상 갱신된 전세계약에서, 어느 시점에 얼마나 연체됐는지, 그때 보증금을 어떻게 처리하기로 합의했는지까지 따지는 싸움이 될 것"이라며 "월세 입금 내역, 문자·메신저 대화, 중도 정산 합의서 등을 평소에 잘 보관해 두는 것이 결국 전세금반환소송의 승패를 가를 자료가 된다"고 조언했다.

또한 임대인·임차인이 보증금 정산을 두고 합의하는 경우에는 "연체차임은 이 합의로 전부 정리되고, 이후 추가로 주장하지 않는다"는 문구를 명시해 두는 것이 좋다는 게 설명이다. 합의서 한 줄에 향후 수백만 원, 수천만 원의 공제 여부가 달라질 수 있는 만큼, 연체·정산과 관련한 문구를 구체적으로 적어두는 것이 분쟁 예방의 최소한의 안전장치라는 것이다.

엄정숙 변호사는 "전세금반환소송이 급증하는 상황에서 이번 판결은 '보증금이 무엇을 담보하는지'를 다시 한 번 분명히 해준 의미가 있다"며 "임대인과 임차인 모두 연체와 보증금, 소멸시효의 관계를 정확히 이해하고, 계약 단계에서부터 정산 기준을 명확히 해두는 것이 분쟁을 줄이는 가장 현실적인 방법"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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