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에너지데일리 조남준 기자] “물은 흐르지만, 제도는 막혀 있다.” 부처 간 물관리 권한을 둘러싼 ‘물그릇 싸움’이 수십 년째 지속되면서 기후위기 속 수자원 재해 대응력이 극도로 취약해지고 있다는 비판이 국회에서 제기됐다.
물 관련 공공기관을 중심으로 환경부, 국토부, 산업부, 농식품부, 행안부 등이 얽히며 통합물관리 정책은 여전히 제자리걸음이다. 실패한 4대강 사업의 트라우마는 녹조와 생태파괴로 이어졌지만, 책임 성찰은커녕 제도개선도 뒷전이라는 지적이다.
이 같은 문제를 짚고 대안을 모색하기 위해 국회 물포럼(회장 한정애 의원)은 지난 18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통합물관리 향상을 위한 법·제도적 개선 방안’을 주제로 제30차 정책토론회를 열었다. 이날 토론회에는 물 관련 학회·협회, 연구기관, 국회 관계자 등 전문가들이 대거 참석해 물관리 기본법 개정, 국가물관리위원회의 기능 강화, 저수지 다목적 활용, 기후변화 대응력 제고 등을 위한 정책 제언이 쏟아졌다.
국회물포럼 회장을 맡고 있는 한정애 의원은 “기후위기 시대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 데 있어 물 문제는 핵심 사안”이라며 “물관리 일원화 2기로 도약하기 위해 현행법을 재점검하고 실질적인 개선 대안을 도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통합물관리 정책이 정치·이념에 휘둘리지 않도록 전문가들의 의견을 입법과 정책에 반영하겠다”고 말했다.
이학영 국회부의장과 안호영 환경노동위원장도 “물산업 성장 가능성은 높지만, 이를 뒷받침할 법제도가 미비하다”며 “국회 차원에서 물관리법 체계의 재설계에 힘을 보태겠다”고 밝혔다.
국회 물포럼 부회장 김주영 의원은 "가뭄과 홍수 같은 재해와 반복되는 수질 오염 문제는 지금의 물관리 체계로는 감당할 수 없다"며 "통합성과 실행력을 갖춘 물관리 체계로 상수, 하수, 지하수, 빗물등의 흐름 전체를 하나로 바라보고 실제로 작동할 수 있는 기반을 갖춰야 한다"고 강조했다.
국회물포럼 부회장 정희용 의원은 "2018년 6월 물관리 일원화 정부조직법 시행에 따라 물관리 기능이 환경부로 일원화 됐으나 현재도 여러 부처와 기관에서 가각 농업용수, 발전용수, 공업 용수 등을 관리하면서 정책간 연계 부족, 부처간 협력 미비, 계획증 중복성 등 지적이 계속해서 나오고 있다"며 "조정기능을 수행할 국가물관리위원회가 제도를 개선해 역할을 해야 한다는 의견이 제시되고 있다"고 말했다.
국회물포럼 부회장 임이자 의원은 "국가물관리위원회는 통합물관리 시대를 열어가는데 큰 역할을 하고 있으나 조직의 독립성 및 전문성, 지자체와의 협력부족, 예산 및 자원의 한계 등 위상과 역할에 한계가 있다"며 "기후 변화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통합물관리 제도 개선 방안 마련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국회 물포럼 부회장 권향엽 의원은 "산업용수,농업용수, 생활 용수, 하천 관리 등 각기 다른 목적과 주체들이 얽혀 있는 물관리 체계를 통합해 국가물관리 정책의 컨트롤 타워가 실질적으로 작동할 수 있도록 법체계를 정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승 자문관 “국가물관리위, 형식적 기구로 전락… 위상 격상 시급”
첫 번째 발제를 맡은 김승 WMO 아시아지역협의회 수문자문관은 현행 국가물관리위원회의 한계를 강도 높게 지적했다. “기후위기 속에서도 국가물관리기본계획은 수립만 되었을 뿐 이행 기반이 부실하다”며, “현재의 물관리위원회는 위상도, 실질적 실행력도 없다”고 비판했다.
그는 중국의 강력한 중앙통제형 모델, 일본의 고도 기술 기반 물순환기본법 사례를 언급하며, “우리도 과학적 데이터 기반의 의사결정 체계와 유역단위 거버넌스 강화를 지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그는 “국가물관리위원회를 단순 자문기구에서 행정위원회로 격상시켜 심의·의결 기능을 부여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최경숙 교수 “농업용 저수지, 방치에서 다목적 자원으로 전환해야”
두 번째 발제자인 최경숙 경북대 교수는 저수지의 다목적 활용 필요성을 강조했다. “국내 농업용 저수지 1만7천여 곳 중 60%만이 제대로 기능하고 있으며, 나머지는 극한 기후에 취약한 상태로 방치돼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일본 만노이케, 스페인 예사, 미국 카월라 등 해외 저수지들이 농업은 물론 산업, 생태, 관광 자원으로 폭넓게 활용되는 사례를 소개하며, “국내도 농업용수 외에 지역사회 수요와 재난대응, 관광·생태 활용까지 고려한 다목적 활용 정책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김익재 KEI 위원 “물관리기본법, 환경정책기본법 함께 손봐야”
세 번째 발제자인 김익재 한국환경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물관리 정책의 법적 토대를 재정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물관리기본법이 실질적인 권한 조정과 기후 대응을 반영하지 못하고 있고, 환경정책기본법·국토기본법 등 타 법률과의 정합성도 떨어진다”며, “국가물관리위원회의 기능을 확대하고 유역 중심의 통합적 물관리로 나아가야 한다”고 말했다.

지정토론… 물전문가들 “기능 통합과 실행력 확보가 핵심”
토론 좌장을 맡은 유철상 한국수자원학회장을 비롯해 권지향 상하수도학회장, 김성준 전 농공학회장, 김수전 습지학회 부회장, 안재현 수자원학회 부회장, 황인성 지하수토양환경학회장은 입을 모아 “이제는 통합물관리의 ‘실행력’을 확보해야 할 시기”라고 지적했다.
권지향 회장은 “도시침수, 싱크홀, 수질악화, 산업용수 부족 등 복합재해가 현실화되며 물 문제는 더 이상 환경 문제가 아니라 생존 문제”라고 했고, 김성준 전 회장은 “중복된 물 관련 법령을 정비해 예산 낭비를 줄이고 협력 체계를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황인성 회장은 “지하수의 전략적 가치가 재조명되어야 한다”며, “지하수-지표수 연계 시스템 구축 등 지속가능한 물관리 기술에 국가물관리위원회가 중심 역할을 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물관리 일원화 2기, 실질적 구조 개편 없인 ‘공회전’
이번 제30차 국회물포럼은 통합물관리의 철학과 비전은 살아있지만, 법적·제도적 기반과 실행체계가 뒷받침되지 않으면 기후위기 대응도, 물산업 성장도 요원하다는 경고의 장이었다. 전문가들은 “이제는 실질적인 권한 조정과 부처 간 칸막이 해소, 과감한 법제 정비가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물관리 일원화 2기의 전환점에서, 기구 격상과 법 개정이라는 ‘제도적 물꼬’를 트는 정치적 결단이 절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