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MHN 나웅석 인턴기자) 스마트폰이 뇌를 망가뜨린다는 ‘디지털 치매’ 우려와 달리, 기술 사용이 인지 저하를 막는다는 연구 결과가 공개됐다.
‘디지털 치매’란 무엇인가?
디지털 치매는 스마트폰, 컴퓨터 등 디지털 기기의 과도한 사용으로 기억력과 집중력, 사고력이 감퇴하는 현상을 말한다. 이 개념은 독일 뇌과학자 만프레드 슈피처가 지난 2012년 저서 '디지털 치매' 에서 처음 제시하며 알려졌다.
슈피처는 디지털 기기가 뇌의 정보 처리 능력을 약화시키고, 인간을 수동적인 사고 상태로 이끈다고 경고했다. 멀티태스킹, 전자교과서, SNS, 유아용 콘텐츠 등 다양한 자극이 주의력, 감정 조절력, 사회성 등을 전반적으로 저하시킬 수 있다고 지적했다.
디지털 기술, 뇌를 보호할 수도?
반면 최근 발표된 대규모 연구는 정반대의 가능성을 제시한다. 미국 텍사스대학교 오스틴 캠퍼스와 베일러대학교 공동 연구팀은 15알 과학 저널 네이처 인간 행동(Nature Human Behaviour)에 게재한 메타분석을 통해, 디지털 기술 사용이 노년층의 인지 기능 저하를 줄일 수 있다고 밝혔다.
연구팀은 성인 41만1,430명(평균 연령 68.7세)이 참여한 57편의 연구를 메타 분석했다. 이들 연구는 50세 이상 일반인의 디지털 기술 사용을 기준으로, 인지 기능 변화 또는 치매 진단 여부를 추적한 내용을 포함한다.
여기서 디지털 기술 사용은 컴퓨터, 스마트폰, 인터넷 등을 단독 또는 조합하여 활용하는 일상적 행위로 정의된다.
분석 결과, 디지털 기술 사용이 많은 그룹은 적은 그룹에 비해 인지 장애 발생 위험 오즈비(Odds Ratio)가 0.42로 나타나, 위험이 약 58% 낮은 것으로 분석됐다. 또한 평균 6.2년간의 종단 연구에서는 인지 능력 저하 위험이 평균 26% 낮아지는 경향(HR = 0.74)이 확인됐다.
연구팀은 “디지털 기술 사용이 인지 기능을 약화시킨다는 ‘디지털 치매’ 가설을 뒷받침하는 증거는 발견되지 않았다”고 밝히며, 해당 효과는 인구통계학적, 사회경제적 변수, 건강 상태, 인지 예비력 등을 통제한 상황에서도 유의미하게 유지됐다고 덧붙였다.
디지털 네이티브에게도 같은 결과가 나타날까?
이번 연구는 디지털 기기 사용의 긍정적 효과를 보여줬지만, 모든 세대에 똑같이 적용된다고 보긴 어렵다. 분석 대상은 주로 50세 이상 중장년층으로, 디지털 기술에 성장기 이후 접근한 세대였다. 인지 기능이 어느 정도 발달한 뒤 디지털 환경에 노출된 경우다.
반면 오늘날의 청소년과 청년층은 두뇌 발달 단계부터 디지털 기기와 함께 자란 ‘디지털 네이티브’다. 이처럼 디지털 자극에 장기적으로 노출된 세대에 대한 영향은, 오히려 부정적인 경향이 일부 연구에서 보고되고 있다.
미국 NIH 산하 연구에서는 하루 7시간 이상 스마트폰을 사용하는 청소년이 감정 조절 능력 저하와 전두엽 백질 밀도 감소를 보였다는 뇌 MRI 결과가 발표됐다.
또한 2024년 한국정보화진흥원 조사에서도, 청소년 과의존 위험군의 84%가 사용 조절에 실패했고, 과반수가 집중력 저하, 불안, 무기력감 등을 호소했다.
이러한 결과는 디지털 기술이 노년층에겐 자극이 될 수 있지만, 발달기 뇌에는 오히려 해가 될 수 있다는 우려를 뒷받침한다. 기술의 효과는 단순히 사용 여부가 아닌, 사용 시기와 방식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문제다.
기술은 해로운가, 유익한가?
결론적으로, 이번 메타분석은 디지털 기술이 무조건 뇌에 해롭다는 기존 통념에 의문을 제기했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특히 연구팀은 다양한 변수들을 고려했음에도 불구하고, 기술 사용이 인지 기능 유지에 긍정적 영향을 미친다는 결과가 통계적으로 유의미하게 유지됐다고 강조했다.
다만 모든 세대에 동일하게 적용되는 결과는 아니며, 특히 발달기 세대에 대한 검증은 부족하다는 점에서, 섣부른 일반화는 경계해야 한다.
‘디지털 치매’라는 개념과는 다른 관점에서 기술이 인지 건강을 지키는 수단이 될 수도 있다는 가능성이 열린 만큼, 향후 논의는 단순한 해악 구분을 넘어서 사용 방식, 연령, 환경에 따른 세분화된 접근으로 나아가야 할 것이다.
사진= 픽사베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