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지수 화가의 아프리카 북에이징 3회

[ MHN스포츠 ] / 기사승인 : 2024-09-10 01:18:46 기사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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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지수 화가
천지수 화가




intro.

아프리카를 잊지 못한다. 가장 찬란했던 내 청춘의 대륙. 그곳에서 느꼈던 감각과 경험들은 언제나 내 가슴 속에 살아있으며 예술적 영감(靈感)의 보물 창고다.



나는 아프리카의 뜨거운 생명력을 닮은 책들을 통해서 아프리카를 다시 기억하려 한다. 그리하여 강인한 생명의 힘을 품은 그림으로 끝내 삶이 성숙되기를 원한다. 세 번째 책은「커피세계사」(탄베 유키히로/윤선혜 옮김/황소자리)이다.









“커피 맛은 쓰다는데 왜 마시나요?“



커피를 한 번도 마셔보지 않은 초등학생 아들이 커피를 자주 마시는 나에게 물어보았다. 그러나 ”글쎄...... 나는 쓴 게 맛있단다.“라고 모순적이면서도 형편없는 대답을 해놓고는 아들과 커피에게까지 미안해졌다. 커피를 마시는 이유는 그게 전부가 아니기 때문이다. 게다가 나는 쓴 음식을 좋아하지도 않는다. 그렇다면 나는 커피를 ’어떤 맛‘으로 마시고 있는가?‘



‘커피나무의 고향인 아프리카 대륙은 우리 인류의 고향이기도 하다. 인간, 고릴라, 침팬지의 공통 조상과 오랑우탄의 조상이 분기된 것은 커피나무속이 출연한 시기와 같다.(1400만년 전경)......(중략) 그렇게 보면 지구상에는 커피나무가 인류보다 훨씬 ’선배‘인 셈이다.’



커피는 물과 차 다음으로 소비량이 많은 세계 3위 음료라고 한다. 유전학자이자 미생물학자인 탄베 유키히로의 「커피 세계사」는 커피에 대한 기초 지식에서부터 인류와 만나게 되는 커피의 전파와 역사를 들려준다. 역사의 굵직한 흐름 뒤편에 커피와 연결된 사건들은 매우 놀랍고 흥미롭다. 인류와 커피나무가 아프리카를 같은 고향으로 두고 있다고 하니, 선사시대부터 이어온 우리의 유전자는 커피의 향과 맛을 느낄 때마다 인류의 고향을 어렴풋이 기억하고 느끼는 것이 아닐까?



저자는 우리가 느끼는 ‘맛있음’이란 그것을 체험하는 장소의 분위기나 어릴 때의 식습관, 체험 그리고 직접 자극에 관여되지 않는 ‘정보’ 등에 의해서도 크게 달라진다고 한다. 나는 저자의 설명에 정말 잘 들어맞는 경험을 한 적이 있는데, 내가 암석 벽화 복원작업으로 아프리카 탄자니아에 있을 때다. 세랭게티 국립공원으로 들어가기 전 한 숙소에서 마셨던 커피 맛을 잊을 수 없다. 푸르른 커피밭이 평화롭게 펼쳐져 있는 곳이었다. 나는 ‘커피밭을 바라보며 마셨던 그 커피 맛’이 지금까지 마셔본 커피 중에 가장 맛있었다고 기억한다. ‘청정하고도 평화로운 커피밭에서 갓 나온 커피의 맛은 신선하고 구수했다’라는 표현 정도로는 부족하다. 오래전 체험했던 맛의 깊이를 지금까지 기억할 수 있는 것은 그때 장소의 분위기와 느낌이 온몸으로 맛을 감각할 수 있도록 역할을 했던 것이다. 따라서 나에게 ‘아프리카=커피’라는 등식은 너무나 자연스러운 것이 되었다.



저자는 또한 ‘역사를 아는 것’이 ‘정보의 맛있음’과 연결돼 커피의 맛을 실제로 변화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한다고 알려준다. 내가「커피 세계사」의 내용을 탄자니아 커피밭에서 마셨을 때 알았다면 커피 역사의 흐름을 감지하며 상상을 능가하는 감동의 맛을 느꼈을 것 같다는 아쉬움이 생긴다.



나는 캔버스를 펴고 선물 받은 아프리카 커피 원두를 갈아서 드립 한다. 다 내려진 커피를 한 모금 마시니, 프로럴 아로마, 크랜베리, 블랙베리, 레몬 사탕, 아몬드 초콜릿...... 다양한 맛이 함유되어 있는 커피의 맛과 향이 나를 아프리카로 데려가는 것 같다.



나는 세월을 거듭하여 커피나무가 꽃을 피우고 빨간 앵두 같은 커피콩이 익어서 정제 과정을 거친 여정을 상상한다. 그리고 잊을 수 없던 커피 맛을 선사했던 아프리카의 자연 속으로 들어가서 내가 커다란 암석에 그렸던 동물들을 캔버스에 소환해 본다. 커피는 언제든 쉽게 마실 수 있는 음료지만, 한 잔을 마셔도 오감을 느끼며 음미하는 여유로운 순간이 커피를 마시는 이유 중에 하나일 것이다. 비록 맛이 쓰더라도 말이다.




65.5x53cm Acrylic on Canvas 아프리카 커피의 기억 2024
65.5x53cm Acrylic on Canvas 아프리카 커피의 기억 2024




‘역사를 알면 맛이 달라진다’라고 했던 저자의 말처럼「커피 세계사」를 읽은 뒤에는 매일같이 마시던 커피 맛이 더욱 특별해짐을 느낀다. 선사시대부터 발견되어 커피가 ‘돈이 되는 나무’가 되자 전 세계로 순식간에 퍼져나간 이야기와 현재 지구온난화로 아라비카 생산지역이 축소되는 안타까움까지 느껴지며, 내가 들고 있는 한 잔의 커피가 소중해진다. 맛이 쓴 커피를 왜 마시냐는 아들의 물음에 나는 이 글과 그림을 보여주며 말하겠다.



”인생은 커피처럼 쓰지만, 삶의 좋은 기억들이 커피향처럼 구수하게 느껴지기도 한단다. 우리가 느끼는 맛들은 ‘온몸의 기억으로 완성’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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