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성백제박물관, 한·중 수교 30주년 기념 국제전시“북위”도록 발간

[ 뉴스포인트 ] / 기사승인 : 2022-01-19 17:58:32 기사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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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포인트 박마틴 기자 | 한성백제박물관이 한·중 수교 30주년(2022)과 한·중 문화교류의 해(2021∼2022)를 맞아 국립부여박물관과 함께 개막한 국제교류전시 도록을 발행했다.




서울시 한성백제박물관과 부여군 국립부여박물관의 학예 인력이 함께 집필하였으며, 다소 생소하고 어려울 수 있는 북위 역사와 전시의 궁금증을 풀어 줄 수 있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번 도록은 크게 4부로 나뉘어 구성되었으며, 그 외에도 국내외 전문가의 논고 4편과 다양한 칼럼이 실렸다.





1부 제목은 ‘선비 탁발부: 발원에서 북위 건국까지’이다. 선비 탁발부가 중원으로 남하하는 역사를 다루고 있다.





멀리 동북부 네이멍구 다싱안링산맥 가셴동에서 시작하여 넓은 초원이 있는 후룬베이얼평원 대택으로 1차 이주를 진행하여 수렵과 채집의 생활방식에서 목축위주의 경제로 전환하였다.





2차로 남하를 진행하여 내몽고 중남부지역 성락盛樂에 자리잡고 유목과 농업을 병행하였다.





386년 북위를 건국한 도무제道武帝(재위 386~409)는 수도를 평성으로 이전하는 3차 이주를 진행하였다.





2부는 ‘북위: 제국의 시대’이다. 평성에서 자리를 잡은 북위는 강력한 군대를 활용하여 차례로 주변의 나라들을 통합하였다. 439년, 5호 16국시대를 종식시키고 북방을 통일함으로써 남북조시대의 막이 열리게 된다.





효문제孝文帝(재위 471~499)는 강력한 한화漢化 정책과 더불어 수도를 낙양으로 옮겼으며, 다양한 정책을 실시하였다.





효문제가 사망한 후에 북위는 점차 힘을 잃어갔으며, 마지막에 동위東魏(534~550)와 서위西魏(535~556)로 분열되면서 북위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3부 제목은 ‘공존과 융합의 다문화 사회 : 이민족의 풍속과 한족의 정취’이다. 효문제가 낙양으로 천도한 후 한화정책을 통해 선비의 풍속과 언어 등을 폐지하였지만, 선비는 여전히 자신의 고유한 생활방식과 풍속을 유지하였다.





중원으로 남하하는 과정에서 유목·농경문화들이 섞이고, 서로 다른 문화가 만나 북위 사회와 문화를 풍부하게 했다.





여기에 실크로드를 통해 서역의 문화까지 연결하자 북위의 수도 평성과 낙양에는 여러 문화가 공존하고 융합하는 다문화 사회가 꽃피는 국제 대도시가 되었다.





4부는 ‘불교의 융성’이다. 황제들은 다양한 민족과 넓은 영토를 다스리기 위해 불교를 정치적인 수단으로 이용하였으며, 북위의 불교는 국가불교적 성격을 지속적으로 유지하였다.





도성 안팎으로 수많은 불교 사원들이 세워졌다.





‘둔황석굴敦煌石窟’ ‘윈강석굴雲岡石窟’ ‘룽먼석굴龍門石窟’석굴 사원은 당시 북위의 불교가 얼마나 대단한 규모였을지 짐작할 수 있게 한다.





북위北魏(386~535)를 세운 선비 탁발부鮮卑 拓跋部는 5호 16국 시대의 혼란했던 북방을 통일하고, 중국 남방과 중앙아시아문화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여 유목遊牧문화와 한漢문화를 공존시켰다. 이번 도록을 통해 수隋나라·당唐나라 통일제국의 기틀을 마련한 북위와 백제의 관계를 새로운 자료와 시각으로 살펴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마련되었으면 한다.





올해 2월 27일까지 진행되는 특별전 기간에 맞춰 도록이 출판되었으며, 도록은 서울과 부여의 상징성을 담아 2가지 형태의 표지로 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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