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화물연대 등 “유류세 인하로 실질적 효과 얻기 힘들어”

원유 및 환율 급등, 소비자 물가, 지속적인 유가 상승 시 ‘무용지물’
‘탄소중립 역행’, ‘부유층 위주 혜택’, ‘세수 손실’ 등 여러 문제점도 나와

국제 정세 등 외부적인 요인으로 국내 유가가 천정부지 치솟고 있어, 이에 대한 대안이 시급한 실정이다.
국제 정세 등 외부적인 요인으로 국내 유가가 천정부지 치솟고 있어, 이에 대한 대안이 시급한 실정이다.

[국회=환경일보] 김인성 기자 = 살인적인 유가 상승이 계속되고 있다. 작년 6월 1374원이었던 경유값은 2021년 하반기 내내 상승 추이를 보이다, 2022년 상반기 큰 폭으로 뛰었다.

올해 6월 평균 유가는 2089원으로 전년 동월 대비 ‘52%’나 상승했다. 10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한 셈이다.

더욱이 최근인 6월 넷째 주 휘발유 가격이 2115.78원, 경유는 2127.17원으로 경유 가격이 휘발유를 추월했다. 경유 운송 수단을 활용하는 화물노동자의 부담이 더욱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

이에 정부는 유류세를 법이 허용하는 최대폭인 37%까지 인하했다. 또한 여야는 앞다투어 유류세 탄력세율 인하폭을 최대 50%까지 하도록 하는 법안을 발의하고 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유류세 인하’가 효과적인 정책이 아니라는 지적이다.

 

실효성 없는 세금 감소 정책에

서민은 ‘울상’ 정유사·주유소는 ‘웃상’

 

과거 이명박 정부 때도 유류세를 인하한 적이 있으나, 국제유가가 계속 오르면서 소비자 가격도 올라 세금 인하가 결국 ‘무용지물’이 된 선례가 있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별 소득 없이 1조6000억원의 세수손실까지 불러오기까지 했다.

당시 유류세 인하로 국민이 체감할 수 있는 효과는 매우 적었던 반면, 되레 정유사와 주유소가 최대 수혜자가 됐다.

문제는 지금도 그때와 상황이 별반 다르지 않다는 점이다. 지속적인 유류세 인하에도 불구하고 기름값이 급등하는 현상이 반복되고 있다.

현재 이러한 고유가 정책은 정유소와 주유소에게만 희소식으로 작용하고 있다. 작년 11월 유류세 20% 인하 조치 이후부터, 정유사와 주유소의 마진이 크게 늘어난 것이다.

오피넷 자료를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휘발유의 경우 유류세 인하조치 후 올해 3월까지 리터당 정유사 마진(정유사 세전공급가-싱가포르 현물가)은 이전 동기간에 비해 평균 23.9원 늘었다. 주유소 마진(주유소 판매가-정유사 세후공급가)은 40.1원 증가했고, 경유는 리터당 정유사 마진이 18.6원, 주유소 마진이 24.4원 늘었다.

아울러 유류세 인하가 지속될 시 재정운용의 어려움 또한 가중될 것으로 보인다. 전문가들은 현재 유류세 인하로 3조8000억원 규모의 세수가 줄었으며 앞으로 5조원이 더 줄어들 것으로 전망했다.

고유가 시대, 서민부담을 낮추기 위한 해법을 논의하기 위해 4일 국회에서 열린 긴급토론회 /사진=김인성 기자
고유가 시대, 서민부담을 낮추기 위한 해법을 논의하기 위해 4일 국회에서 열린 긴급토론회 /사진=김인성 기자

유류세를 최대 50%까지 인하하게 된다면 1년 동안 정부의 세입 감소는 총 '15조원‘에 달하게 된다.

“일시적으로 세율을 감소시켜 유가 부담이 낮아 보일 순 있다. 하지만 여러 문제점이 많은 정책이다. 이를 기조적인 정책수단으로 밀고 나가기엔 실효성이 없다.”

4일 국회에서 열린 ‘고유가 시대, 서민부담 낮추기 위한 해법’ 긴급토론회를 주최한 장혜영 의원(정의당)은 유류세 인하에 대한 한계에 이 같은 우려를 나타냈다.

 

유류세 인하 실상은?

‘서민 경제 지원’ 아닌 ‘부유층 경제 지원’

 

흔히 유류세 인하가 ‘서민경제 지원’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돼 있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유류세 인하는 가격 탄력성 차이로 인해 고소득층에 더 큰 혜택을 가져다준다. 역진성으로 인해 서민이 아닌 부유계층에 이익이 편중된다는 것은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2018년 있었던 유류세 인하에 따른 세 부담을 소득 분위별로 나눠 분석한 국회예산정책처의 연구에 따르면, 소득 1분위 가구는 연평균 1.5만원 정도의 세금 부담이 완화됐지만, 소득 10분위 가구는 15.8만원 세금 부담이 완화됐다.

유류세를 내렸을 때 소득 하위 10%보다 상위 10%가 6.3배 이상 효과를 본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즉 유류세 인하 혜택이 서민들에게 오롯이 돌아가지 않는다는 의미다.

정부의 유류세 인하액이 소비자 가격에 그대로 반영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경쟁시장에선 수요와 공급 논리에 따라 조세귀착이 결정되는 것처럼, 세금 인하의 혜택 또한 소비자와 공급자가 서로 나눠 가지게 된다.

외부적 요인에 의해 국제유가가 계속해서 오르는 상황이기에, 정작 소비자들은 누려야 하는 세금 인하 효과를 체감하기 힘들다.

유류세 인하 정책이 일반 시민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이 되기 힘들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입장이었다.
유류세 인하 정책이 일반 시민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이 되기 힘들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입장이었다.

윤세종 플랜 1.5 변호사는 “종량세인 유류세의 일률적인 인하는 유류 사용량이 많고 가격 상승에 덜 민감한 고소득층에 더 많은 이익을 부여하게 된다”며 “물가 인상으로 인한 국민 생활의 어려움을 최소화하고자 하는 정책 목표에 부합하기 어렵다”고 유류세 인하의 근본적인 문제점을 짚었다.

 

화물‧여객업 종사자도 답답‧‧‧

“유류세 인하로 오히려 보조금 줄어”

 

화물자동차 유류세 연동보조금의 경우 유류세가 인하되면 보조금 지급단가도 함께 낮아지는 구조로 돼 있다. 사실상 화물‧운송 노동자들의 어려움을 해결하는 데 큰 도움이 되지 않는 셈이다.

작년 11월 이전 리터당 345.54원 하던 유가보조금은 11월 유류세 인하로 239.79원이 됐으며, 지난 5월 유류세 인하로 187.62원으로 다시 줄었다. 7월 유류세 인하로 유가보조금은 재차 줄어든다.

유류세 인하에 따른 효과가 미미함에 따라, 정부는 일시적으로 운송‧물류업계에 대한 경유 유가 연동보조금 지급을 시행하고 있다. (화물 44만대, 버스 2만대, 연안화물선 1300대 등)

유가연동보조금은 경유값이 기준가격을 초과할 경우 초과분의 50%를 정부가 제공하는 지원금이다. 5월부터 기준금액이 1750원으로 하향 조정되면서 6월 평균 리터당 169.5월씩 추가로 보조금을 지원하고 있다.

하지만 박귀란 공공운수노조 화물연대본부 정책국장은 “유가연동보조금은 대형화물차 기준으로는 월 60만원 수준으로, 유류비가 월 300만원 이상 증가한 상황에서 지원의 효과가 크지 않다”고 어려운 현실을 전했다.

박 국장은 “유가가 계속 상승하자 정부는 7월1일부터 기준금액을 1700원으로 하향 조정했다. 그러나 업계가 실제 부담하는 유류세분(183.21원)이 최대 지원 한도이므로 추가 지원은 불가능한 상태”라고 덧붙였다.

화물 운송 노동자 등을 위해서는 일괄된 유류세 인하가 아닌 친환경차 전환, 개별 지원제도 활용 등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화물 운송 노동자 등을 위해서는 일괄된 유류세 인하가 아닌 친환경차 전환, 개별 지원제도 활용 등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우리나라는 경유에 대한 유가 연동보조금 제도 이외에도 ▷차량용 LPG 판매부담금 제도 ▷농어업용 면세유 정책 ▷경차에 대한 유류 환급금 제도 등 유종, 용도, 차량에 따른 각종 보조금(지원금) 제도를 책하고 있다. 이는 그동안 유류세를 둘러싼 수많은 논쟁의 역사가 있었기에 만들어진 것이기도 하다.

임상수 조선대 경제학과 교수는 “유가 연동보조금 비롯한 제도들을 잘 활용하면, 일괄적인 유류세 인하가 아니라 개별적인 지원이 가능하다”고 설명하며 “그러함에도 이에 대한 사회적 논의를 진행하고 있지 않다”고 지적했다.

 

친환경차 전환 위해 세금 펑펑 쓰면서,

내연차 위해 휘발유‧경유 가격 내리려 무리한 정책 추진

 

정부는 작년 말 2022년 무공해자 50만대 보급을 위해 2조4000억원의 예산을 투입한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환경부는 전기‧수소차 등 무공해 승용차 16만5000만대, 상용차 9만대에 구매 보조금을 지급하고, 충전 인프라 구축을 위해 전기차 충전기 6만기, 수소차 충전소 300기 이상 확대 등의 목표를 세웠다.

이은주 정의당 비상대책위원장은 “유류세 인하 조치가 기후위기에 대응하는 정부의 탄소중립 정책과 충돌하는 점 등을 고려했을 때, 우리 사회 전반에서 나타날 정책 부작용과 후폭풍을 충분히 따져봐야 한다”고 모순된 정책 추진을 꼬집었다.

최근 경유차 소유자에게 환경개선부담금을 부과하게 한 현행법이, 헌법에 위반되지 않는다는 헌법재판소의 결정이 전원일치로 합헌이 됐다. 국가적으로 탄소중립 시대로 향하는 방향에 대해서 명확히 정해졌다는 얘기다.

임상수 교수는 “급격한 고유가로 인한 비상 상황과 기후위기 극복을 위해 탈화석연료 정책을 추진해야 하는 상황 등, 유류세 인하는 조세 정의와 기후정의 두 가지 모두를 해치는 정책이 될 수밖에 없다”고 비판했다.

화물연대를 대표해서 해당 토론회에 참석한 박귀란 국장도 역시 “중대형 화물차의 경우 비용의 문제로 친환경차로의 전환이 매우 어려울 것이 예상되지만, 기후위기를 고려해 친환경차 확대를 적극적으로 추진해야 한다”고 의견을 같이했다.

박 국장은 “친환경차 확대가 실질적으로 가능하려면 차량구입 비용 및 연료 비용 등 현실적 부담을 고려해 비용 지원 방안 등이 실질적으로 마련돼야 한다”고 제언했다.

기후위기 대응, 저탄소 시대를 위해서도 해당 정책은 적절치 못하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높았다.
기후위기 대응, 저탄소 시대를 위해서도 해당 정책은 적절치 못하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높았다.

윤세정 변호사는 “즉각적인 대책을 위해 유류세 인하보다는 석유 소비로 인해 발생하는 온실가스 배출에 대한 세금의 성격을 명확히 해야 한다”며 “확보된 세수가 수송 부문의 전환과 기후변화 대응에 사용할 수 있는 개편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냈다.

 

해외의 고유가 정책 보고 배워야‧‧‧

뉴질랜드 반값 대중교통, 독일 9유로 티켓 제도

 

지난 3월, 뉴질랜드 정부는 3개월 동안 모든 대중교통 요금을 절반을 줄이는 정책을 발표했다.

“이러한 정책들은 계속돼야 합니다. 여러분들은 5월 예산을 통해 기후 비상 대응 기금으로 이뤄진 더 많은 투자를 보게 될 것입니다.”

이날 뉴질랜드 그랜드 로버트슨 재무장관은 대중교통 확대, 대중교통 비용 절감, 연료 효율적인 하이브리드와 전기자동차 지원 등 각종 정책이 고유가뿐만 아니라, 기후위기 극복을 위한 방안임을 분명히 밝혔다.

뉴질랜드 외 독일 정부 또한 지난 6월1일부터 8월31일까지 9유로 정책을 시행한다고 공표했다. 해당 정책은 9유로(한화 약 1만2000원)만 내면 한 달간 전국의 근거리 대중교통을 모두 이용할 수 있도록 하는 정책이다.

베를린의 가장 저렴한 대중교통 월간 이용권이 63유로(약 8만5000원)라는 점을 볼 때 9유로는 매우 저렴한 가격이다. 지난 6월 한 달간 독일 철도 이용객 수는 10~15% 정도 늘어난 것으로 추산됐고, 독일 26개 도시 중 23개 도시에서 차량 정체 수준이 낮아졌다는 조사도 공개됐다.

이헌석 에너지정의행동 정책위원은 “여러 해외 사례들을 국내로 도입해야 한다. 이는 고유가 시대 유류비 인상으로 고통받는 국민에게 혜택을 줄 뿐만 아니라, 대중교통 중심의 녹색교통 정책을 추진하는 도력을 얻게 될 것”이라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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