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에서 처음으로 원숭이 두창 감염 의심 환자 2명이 발생한 가운데, 이 중 1명이 의심 증상이 있는데도 공항 검역을 통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다행히 이 의심 환자는 원숭이 두창 진단 검사 결과 음성이 나왔고, 질병관리청 추가 분석에서 '수두'로 판명 났다.

 하지만 의심 증상이 있는데도 '증상 없음'으로 신고해 검역 과정에서 걸러지지 못했다는 점에서 원숭이 두창 방역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원숭이 두창 특성상 잠복기가 길어 건강진단 질문서를 허위로 작성하거나 의심증상이 있어도 병원에 가지 않으면 발병 사실을 파악하기 어려운 만큼 사실상 개인 양심에 맡길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코로나19는 입국 전후로 검사를 받아야 하기 때문에 검역 단계에서 걸러지기 쉬운 구조다. 그러나 원숭이 두창은 발열이나 수포형 발진이 있는지 본인에게 답변을 요구하는 식이다.

 A 씨는 지난 19일 이미 전신증상과 피부병 변이 일어났지만 건강 상태 질문서에 '증상 없음'으로 기재해 제출했으며, 발열 체크에도 정상체온으로 기록됐다. 피부 병변이 일어났지만 검역관들은 의심 환자로 분류해 내지 못했다. A 씨는 진단 검사 결과 원숭이 두창이 아닌 수두 환자로 판명 났지만, 이 사례는 원숭이 두창 증상을 허위신고해도 방역망이 무색하다는 문제점을 고스란히 드러냈다.

 반면 전날 원숭이 두창에 확진된 내국인 B 씨는 공항 내에서 자발적으로 질병관리청 콜센터 1339에 의심증상이 있다고 신고, 추가 접촉 및 전파를 차단할 수 있었다. 개인 양심에 따라 빠른 조치가 가능할 수도, 지역사회에 조용히 전파될 수도 있다는 얘기다.

 원숭이 두창에 감염된 상태로 입국했더라도 잠복기가 최대 21일로 길어서 검역을 통과할 가능성도 높다. 이 경우 가족 등 지역사회 전파 우려가 있다. 의심증상이 생길 때 병원을 찾거나 방역 당국에 신고하지 않고 의도적으로 숨긴다면 찾아낼 방도가 없다는 얘기다.

 백경란 질병관리청장도 전날 브리핑을 통해 "발생국가를 방문한 후에 의심증상이 있는 이들의 자발적인 신고와 검사가 있어야 추후 확산 차단 조치가 가능하다."라고 강조했다.

 임숙영 중앙방역대책 본부 상황 총괄단장 역시 "원숭이 두창의 잠복기가 길기 때문에 검역 단계에서 확인하기가 어렵다는 측면이 있는 것은 사실"이라며 "검역을 일부 강화하는 방안, 본인으로부터 건강 상태와 관련해 신고를 유도하는 방안을 집중적으로 추진하겠다."라고 밝혔다.

 건강 상태를 허위로 신고했을 때 처벌할 수 있는 근거는 있다. 입국할 때 건강 상태를 허위로 신고한 사실이 확인된 경우에는 검역법 위반으로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진다.

 엄중식 가천대 길병원 감염 내과 교수는 "해외 입국자 모니터링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면서도 "유입되더라도 원숭이 두창은 직접 접촉으로 전파되기 때문에 우리나라에서 유행 가능성은 낮거나 소규모 유행이 예상돼 겁낼 필요는 없다."라고 말했다.

 세계보건기구(WHO)에 따르면 지난 15일 원숭이 두창 확진자가 발생한 국가는 42개국이다. 원숭이 두창이 풍토병인 국가로는 카메룬, 중앙아프리카공화국, 콩고민주공화국, 가봉, 코트디부아르, 라이베리아, 나이지리아, 콩고, 시에라리온 등이 있다. 가나는 동물에서만 원숭이 두창 바이러스가 확인됐다.

 풍토병이 아닌 국가로는 지난달 7일 영국에서 처음 확진자가 발생한 바 있으며, 영국에서는 790여 명이 확진 판정을 받았다. 이에 정부와 방역 당국은 전날 영국 등 27개국을 검역 관리지역으로 지정하고, 특히 영국, 독일, 프랑스, 스페인, 포르투갈 5개국은 발열감시를 강화하기로 했다.

 원숭이 두창에 확진되면 동성애자라는 낙인이 찍힐까 봐 의심증상이 있어도 신고나 진단 검사를 꺼릴 가능성도 있다.

 최원석 고대안산병원 감염 내과 교수는 "코로나19 때에도 확진자로 부정적인 이미지가 생길까 봐 검사를 피하다가 유행을 더 키운 경험이 있다."라며 "원숭이 두창의 경우 확진자가 남성인지, 성적 지향이 무엇인지 부각된다면 진단을 회피하거나 역학조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을 수 있다. 언론 보도와 역학조사, 의료기관의 대응 모두 세심할 필요가 있다."라고 경고했다.

 국내 첫 원숭이 두창 확진자가 나오자 질병관리청은 원숭이 두창 위기경보단계를 '관심'에서 '주의'로 올렸다. '주의' 단계에서는 원숭이 두창 대책반에서 중앙방역대책 본부로 조직 체계가 바뀌면서, 전국 시도 내 모든 시군구에서 지역 방역대책반을 설치해 비상방역체계를 가동한다. 이에 따라 지자체·의료기관 협조가 원활해진다. 또 하반기에는 원숭이 두창이 빈발하는 국가에 대해서 검역 관리지역을 지정할 계획이다. 이들 국가에 대해서는 발열 기준을 높여 해외 유입 감시를 강화한다.

 하지만 현재 검역 단계에서 진행하고 있는 발열 체크와 건강 상태질문서만으로는 앞서 의심 환자였던 A 씨와 같이 증상이 있어도 공항을 빠져나갈 수 있는 가능성이 여전히 존재한다. 이에 대해 임숙영 단장은 "건강 상태질문서를 허위로 신고한 경우에는 검역법에 따라서 1년 이하의 징역 그리고 1000만 원 이하의 벌금을 물릴 수 있다."면서 "(기존 검역 과정에서는) 어느 정도 한계가 있기 때문에 건강 상태질문서를 통해서 좀 자발적으로 신고를 해주십사 당부를 드린다."라고 말했다.

 또 원숭이 두창의 잠복기가 길기 때문에, 잠복기에 국내로 유입되는 경우에는 실제로 지역사회에서 의료기관을 통한 신고가 굉장히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출입국자 대상 SMS 문자 발송 등으로 건강 상태질문서에 대한 신고율을 높이고, 의심 증상이 발생했을 때 질병관리청으로 신고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독려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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