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건물 주변 곳곳 디스커버리펀드 원금 반환 촉구 규탄
- 농성 이유 묻자 “행장 만나 대화 위해”…정작 뒷문 ‘우회 퇴근’ 윤 행장
- “직원도 경찰도 막기 어려워 난감…윗선에서 해결해야할 일”

 

기업은행 본사 앞 장례식 퍼포먼스가 130일째 이어지고 있다. 사기 판매 논란이 일고 있는 디스커버리 펀드 관련 보상에 대해 사측과 피해자 간 이견이 좁혀지지 않고 있어서다.

올 초 금감원 분쟁조정안으로 40~80% 배상 수준이 결정됐지만 피해자 측의 수용 거부로 배상기준안은 사실상 유명무실해졌다. 그러나 은행 측은 여전히 금감원이 만든 배상기준안을 따라 자율조정을 진행하면서 피해자들과 갈등을 빚고 있다.

사기판매 문제보다 불완전판매와 투자책임에 초점을 맞춘 금감원의 배상안을 납득하기 어려웠던 피해자들은 새로운 사적화해 보상을 요구하기 위해 기업은행 최고 책임자인 윤종원 행장을 만나 합의를 이루길 바라는 반면, 만남은 성사되지 않고 있다. 결국 길어진 양측의 대치전을 “일반 직원들도, 경찰들도 막기 어려워 난감한 상황”이 연출되고 있다.


디스커버리펀드 피해자들, 기업은행 본사 앞 ‘상갓집’ 농성


지난 20일 기업은행 본사 앞에서 디스커버리펀드에 대한 원금 반환을 요구하는 장례식 퍼포먼스가 진행됐다.  [사진=김은지 기자]
지난 20일 기업은행 본사 앞에서 디스커버리펀드에 대한 원금 반환을 요구하는 장례식 퍼포먼스가 진행됐다.  [사진=김은지 기자]

기업은행 본사 앞에서 금융감독원이 결정한 배상 비율 산정 기준에 불복한 디스커버리펀드 가입 피해자들은, 현재 동일한 펀드에 대해 지난 6월 100% 보상을 단행한 한국투자증권 방식과 같은 사적화해를 주장하며 농성을 이어가고 있다.

현장을 확인해보니, 건물 주위에는 장례식장을 연상시키는 상조기와 제사상, 부적 등과 함께 계약무효와 원금 반환을 촉구하는 피켓 등이 곳곳에 널려 있었다. 정부의 방역지침으로 소규모 인원이 상주하고 있었으나, 긴 머리에 여자 소복을 입은 복장 코스프레 등으로 상갓집 분위기가 만들어졌다.

이같은 퍼포먼스를 계속 진행하는 이유에 대한 질문에 기업은행 디스커버리펀드 사기피해대책위원회 관계자는 “지금은 없어졌지만 과거 채권추심자들이 돈을 받을 때까지 저승사자처럼 복장을 입고 채무자의 소재처를 찾아가 자리를 지키고 있는데서 착안됐다”며 “피해자들이 억울하게 원금을 다 돌려받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이렇게 과장을 해서라도 피해구제를 호소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현장에서 만난 한 디스커버리펀드 피해자는 “자식보다도 더 믿었고 국책은행이어서 더 안전하다는 생각에 있는 돈을 다 은행에 맡겨놓았는데 이런 일이 생길 거라고 생각도 못했다”며 “은행 직원은 검찰이 진행된 압수수색에 대한 판단을 내리든지 피해자들이 소송을 걸어서 이기든지 해야 해결이 나지 자신들 선에는 쉽사리 해결할 수 있는 게 아니라고 되레 설득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30%만 손해를 보셔야한다고 하는데, 3억 투자에 눈 감고 9000만원 손해를 보라고 하면 그 직원은 그리 하겠는지 묻고 싶다”며 “6개월에 3%를 주겠다고 하고 전 청와대 정책실장이었던 ‘장하성 동생’ 펀드라고 해서 그 명성에 맞게 안전한 펀드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만약 직원이 당시에 ‘이게 잘못되면 10% 손해 볼 수도 있다’고만 얘기를 해줬어도 섣불리 노년에 어렵게 모은 돈을 투자하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글로벌채권펀드, 자율조정 20% 채 안 돼…금감원 배상기준 거부”


금감원 배상기준을 받아들일 수 없다며 이를 토대로 한 자율조정을 거부하고 있는 피해자들은 디스커버리펀드 중에서도 US핀테크글로벌채권펀드에 가입한 피해 고객들로 확인됐다. 이들은 지난해 6월 결정된 선 가지급금으로 원금의 50%는 대부분 지급 받았지만, 나머지 50%는 받지 못한 상태다. 배상안이 추가 정산의 기준이 되고 있는 상황에서 이를 토대로 하는 자율조정은 받아들이지 않고 있어서다. 

환매중단 규모가 가장 큰 글로벌채권펀드는 기업은행에서 판매된 규모가 3612억원으로 가장 컸을 뿐 아니라, 상품구조 자체가 변경된 사실이 드러난 바 있다. 지난 5월 24일 금감원 분쟁조정위원회 결정문에 따르면, 디스커버리펀드는 DLIF연계 펀드였지만 2017년 9월 기업은행과 디스커버리자산운용은 ‘DLG의 사모사채를 매입하는 형태로 투자구조를 변경해 글로벌채권펀드를 출시하기로 결정’했다. 이 DLG는 연혁도 신용등급도 없었는데 이에 대한 평가도 없이 상품구조가 변경돼 판매가 이뤄진 것으로 알려졌다.

대책위는 지난 분쟁조정에 참여한 글로벌채권펀드의 대표 사례자가 지난 7월 1일 배상기준안을 최종 수락하지 않았음에도, 금감원이 불분명한 배상비율 산정기준으로 은행 측이 자율조정을 진행하도록 묵인했다고 보고 있다. 대책위는 “이는 금융소비자보호를 위한 법률을 정면으로 위반하는 것”이라며 “기업은행은 금감원의 지침에 따를 수밖에 없다는 억지 주장으로 책임을 회피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대책위 이의환 상환실장은 “현재 글로벌채권펀드는 기업은행의 자율조정에 응한 합의비율이 20%가 채 안 될 것”이라며 “동일한 펀드에 대해 한국투자증권은 100% 배상하는 데 반해 기업은행은 현재 금감원이 정해준 80% 선에서만 할 수 밖에 없다면서 스스로 그 틀을 깨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지난해 배진교 의원도 윤 행장에게 (100% 배상한) 한국투자증권과 NH투자증권이 배임 문제가 없다는 판단을 갖고 법적 검토도 끝내고 피해자들과 원만하게 합의하지 않았냐고 질의한 바 있다”며 “금감원 배상비율 산정 기준보다 더 좋은 안이 있을 경우 협의해서 피해보상을 해주는 게 금융 신뢰를 회복하는 동시에 피해자들이 원하는 방식”이라고 덧붙였다.


배상위원회 ‘불투명’…출퇴근길 농성에도 미동 없는 윤 행장


금감원이 결정하는 배상기준안과 별도로, 은행 내부에는 배상수준을 논의하는 배상위원회가 있다. 이에 피해자들은 배상위원회에서 별도 논의를 통해 새로운 합의안을 함께 낼 수 있기를 바라는 상황이다.

이와 관련해 이 실장은 “금감원의 배상비율 산정 기준이 나오면 내부적으로 조사를 통해 사실관계를 다시 확인하고, 이를 토대로 배상위원회에서 어느 고객은 몇 프로가 적당한 지 심사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사실상 금감원의 분조위 역할을 그대로 하는 거라면 이를 좀 더 투명하게 공개해서 이해충돌 문제는 없는지 잘잘못을 따져보고 합의 비율을 세세하게 정할 수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현재로서는 배상위원회 등이 비공개돼있는 상황에서 피해자들이 합의 논의를 위해 바라볼 수밖에 없는 대상은 윤 행장으로 보인다.

다만 지난해 6월 8일 디스커버리펀드 피해자들과 윤 행장과의 만남이 성사됐음에도 입장 차만 확인된 채 합의점이 도출되지 못한 바 있다. 지난해 국감에서도 윤 행장은 “불완전판매에 대한 책임만 인정하고 일부 배상을 하겠다. 일관되게 디스커버리펀드 손실보상이 업무상 배임과 자기책임원칙에 반하지 않아야 한다”고 밝히면서 피해자들과 대화의 접점이 생기지 못한 모습이었다.

결국 피해자들의 항의 수위는 높아졌지만 요구하는 내용은 일관된다. 각자 입장을 조금씩만 양보하고 서로 납득할 수 있는 합의안을 만들자는 것이다. 이에 대책위와 피해자 등은 출퇴근길에서라도 윤 행장을 만나기 위해 농성을 이어가고 있지만, 아직까지 윤 행장은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는 모습이다.

실제로 지난 20일 퇴근을 위해 건물 밖으로 모습을 드러낸 윤 행장은 보안요원 등의 경호와 함께 본사 뒷문에 대기 중이던 차량으로 빠르게 승차해 이내 사라졌다.

한편, 더리브스는 기업은행 측에 배상위원회를 통해 새로운 사적화해안을 검토할 수 있는 지, 연일 농성이 이어지는 가운데 일반 직원도 경찰도 난감해하는 분위기 속에서 윤 행장 및 이사회 판단의 재고는 없는지 질의했지만 답변을 받지 못했다.  기업은행 관계자는 더리브스의 질의에 대해 “아직까지 답변을 받지 못했다”고 말했다. 

김은지 기자 leaves@tleav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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