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75일 만에 '하림 PBA-LPBA 챔피언십' 우승으로 LPBA 정상에 복귀한 강지은(SK렌터카)의 첫마디는 '환호'가 아닌 '솔직한 고백'이었다. 세트 스코어 3-0의 압도적 리드, 3-3의 악몽 같은 추격 허용, 그리고 마지막 8:8 서든데스에서 터진 기적 같은 풀루크(Kiss) 득점까지. 강지은은 천당과 지옥을 오간 끝에 '행운의 여신'의 선택을 받았다.
다음은 우승 직후 강지은과의 일문일답을 재구성한 내용이다.

# "이건 아닌데..." 승부처에서 터진 얄궂은 행운
마지막 7세트 8:8 동점. 챔피언십 포인트 하나를 남겨둔 상황에서 강지은의 큐를 떠난 공은 행운의 득점으로 연결됐다. 1목적구가 2목적구를 때려 득점 코스로 밀어주는 기막힌 장면이었다.
강지은은 당시 상황에 대해 "마지막 1점을 성공시켰을 때는 우승해서 좋기도 했지만 '이건 아닌데...'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생각했던 그림이 아니었다"며 멋쩍게 웃었다.
그녀는 "4세트나 5세트에 이런 행운이 나왔다면 괜찮았을 텐데, 하필 우승이 결정되는 마지막 득점이라 더 미안하게 느껴졌다"고 털어놨다. 하지만 "그래도 승부는 승부인 만큼 기분 좋게 생각하려 한다"며 우승의 결과를 담담히 받아들였다.

# 김민아의 한마디 "야, 미안하다고 말해!"
경기 종료 직후, 준우승자 김민아와 나눈 대화 내용도 공개됐다. 강지은은 "민아 언니가 '그건 아니지'라면서 (장난 섞인 투로) '미안하다고 말해라'라고 하더라"고 전했다.
흥미로운 점은 강지은의 4년 전 우승과 이번 우승이 묘하게 닮아있다는 것이다. 강지은은 "4년 전 우승했을 때도 마지막 득점이 지금과 상당히 비슷했다"며 자신에게 유독 따르는 '우승 운'에 대해 신기해했다.
# 3-0에서 3-3까지... "팔이 잠겨버린 악몽"
초반 3세트를 내리 따내며 손쉽게 우승하는 듯했던 강지은. 하지만 4세트부터 급격히 흔들린 원인은 심리적인 압박감과 신체적 경직 때문이었다.
강지은은 "3세트까지는 좋았는데 4세트부터 공이 원하는 대로 가지 않으면서 팔이 잠기기 시작했다"고 고백했다. 이어 "답이 나오지 않았고, 실수했던 공의 잔상이 계속 남았다. 세트 스코어 3-2가 됐을 때 이미 풀세트 접전을 예감했다"며 당시의 암담했던 심정을 전했다.
마지막 7세트 8:8까지 따라잡혔을 때는 "초구를 실패했을 때 느낌이 좋지 않았고, 팔이 계속 풀리지 않아 질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며 "특점 직전에는 눈물이 글썽글썽할 정도였다"고 벼랑 끝에 몰렸던 심경을 생생하게 전했다.
결국 눈물을 쏙 들어가게 만든 마지막 '한 방'으로 강지은은 4년의 긴 침묵을 깨고 다시금 LPBA 최정상에 섰다.

# 강지은 우승 기자회견 전문(全文)
◆ 우승 소감.
= 정말 이런 식의 우승을 원한 건 아니었다(웃음). 사실 득점을 하기 전에 눈물이 글썽글썽 했는데, 마지막 득점을 성공하고 눈물이 쏙 들어갔다. 그래도 우승을 해서 너무 좋다.
◆ 3세트까지 경기력이 좋았는데, 4세트부터는 오히려 경기력이 좋지 않았다.
= 경기 중에도 생각을 해봤는데 답이 나오지 않았다. 돌이켜보면 실수했던 공에서 여운이 남은 것 같다. 공을 쳐도 원하는 대로 공이 가지 않으면서 팔이 잠기기 시작했다. 세트스코어 3:2가 됐을 때 풀세트 경기로 이어질 것 같았다.
◆ 마지막 세트에서 앞서고 있다가 8:8까지 따라잡혔다. 그때 무슨 생각이 들었나.
= 초구를 실패했을 때 좋지 않은 느낌을 받았다. 팔이 계속 풀리지 않아서 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김민아 선수가 4세트부터 팔이 풀리고 컨디션 회복을 하면서, 마지막까지 쉽지 않을 것 같았다. 마지막 1점을 성공시켰을 때는 우승해서 좋기도 했지만 '이건 아닌데…'라는 생각도 들었다. 생각했던 그림이 아니었다.
◆ 경기가 끝나고 김민아 선수와 무슨 이야기를 나눴나.
= 김민아 선수가 "그건 아니지"라면서 "미안하다 말하라"고 애기하라 했다(웃음). 4년 전에 우승을 했을 때도 마지막 득점이 지금과 상당히 비슷했다. 또 이렇게 우승을 할거라고 생각하지도 못했다.

◆ 승리의 여신이 강지은의 손을 들어줬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 4세트나 5세트에 이런 득점이 나왔다면 괜찮을텐데, 하필 우승이 결정되는 마지막 득점이라서 더욱 미안하게 느껴진다. 그래도 승부는 승부인 만큼 기분 좋게 생각하려 한다.
◆ 마지막 우승을 한 지 4년이 지났다.
= 마지막 우승을 한 게 기억이 나지 않을 정도다. 2021-22시즌 3차투어(휴온스 챔피언십)을 우승하고 6차투어(NH농협카드 챔피언십)에서도 결승전에 진출했다. 당시 김가영(하나카드) 선수에게 패배한 이후에 4년 동안 결승전에 진출하지 못했다. 돌이켜보면 멘털이 좋지 않다고 느낀다. 개인 투어에서는 더욱 그런 것 같다. 팀리그에서는 팀원들과 함께 이겨 낼 수 있지만, 투어에서는 혼자서 헤쳐 나가야 하는 만큼 힘들 게 느껴졌다. 그래도 이번 우승으로 혈이 뚫리는 느낌을 받는다.
◆ 이번 우승을 계기로 앞으로 잘 풀릴 것 같다는 느낌을 받는지.
= 이번 대회가 터닝 포인트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번 대회 전까지 상금 랭킹이 26위여서 월드챔피언십 진출을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32강에서 백민주(크라운해태) 선수만 이기자는 생각이었는데, 그 경기에서 승부치기 끝에 이겼다. 한 경기 한 경기를 이기면서 우승까지 차지했고, 월드챔피언십 진출까지 확정할 수 있게 됐다.
◆ 이번 대회에서 백민주 선수를 비롯해 유독 친한 선수들과 경기를 많이 했다.
= 짜릿하다. 말로 표현할 수 없다(웃음). 그래도 친분이 있는 선수들이 경기 끝나고도 이번 대회에서 내가 잘할 것 같다는 이야기를 많이 해줬다. 응원을 받으면서 힘이 됐다.
◆ 김민아 선수가 기자회견 밥을 많이 얻어 먹겠다고 했는데.
= 4년 만에 한 번 했는데, 한 번 살 의향은 있다. 그래도 김민아 선수가 언니인 만큼, 이후에는 다시 얻어 먹겠다(웃음).
◆ 4년 전 우승 했을 때와 지금 댤라진 점은 무엇인가.
= 실력적으로 많이 성장한 것 같다. 예전에는 공을 잘 치지 못해도, 씩씩하게 쳤다. 지금은 공 배치를 알고 있는 수준이 다르다. 경기력도 그때와 비교하면 많이 올라왔다고 느낀다.
◆ 스스로 생각하는 본인 만의 무기는 무엇인가.
= 차분함이다. 이번 결승전에도 3세트까진 차분했는데, 4세트부터는 그러질 못했다. 또 주변에서는 포커페이스를 잘한다고 해주는데, 스스로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사실 무표정하게 생겨서 포커페이스를 하는 것 처럼 보이는 거다.
◆ 시상식에서 SK렌터카 팀원들에게 감사 인사를 길게 했는데.
= 리더인 강동궁 선수를 비롯해서 SK렌터카 팀원들에게 많은 도움을 받았다. 덕분에 많이 단단해졌고, 팀리그에서도 성적을 낼 수 있었다. 완성이 되어가는 느낌을 받았다. (또 고마운 사람이 있다면?) 시상식에서도 말했는데 울산에서 오신 별명이 '놀부'라는 분이 계신다. 당구를 접하고 동호회 활동을 시작할 때, 멘토 같은 선생님이다.
◆ 앞으로의 각오가 궁금하다.
= 개인전에서 혈을 뚫었으니, 앞으로도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선수가 되고 싶다. 팀리그에서도 지금처럼만 한다면 우리 팀이 좋은 성적을 유지할 수 있을 것 같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