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최초 작성일 : 2010-08-09 11:39:00  |  수정일 : 2010-08-09 11:39:40.900 기사원문보기
[매일춘추] 시골장

지금도 내 고향 거창에는 오일장이 열린다. 정감어린 나의 오일장은 지금도 눈에 선하고, 머릿속에 생생하다.


철따라 나오는 농산물과 먹을거리들이 풍성하고 난전에는 농기구며 온갖 잡화들이 재미나게 펼쳐진다. 이장 저장 다니면서 물건을 팔러 온 장꾼들, 시골사람들이 자식처럼 키운 농산물을 팔고 생필품을 사는 각양각색의 물물교환 형태의 장이 선다. 장터 옆 우시장에는 거간꾼들의 농우(農牛) 고르기가 신중하다. 꽉 다문 입을 벌려 나이를 짐작하고 멍에살을 검사한 뒤 걸쭉하게 목소리를 내갈기며 흥정을 붙인다. 눈만 멀뚱 하늘을 보는 농우들의 음메 소리에 학자금 마련할 아부지의 주름살이 엿보인다. 집안의 전재산인 농우를 팔고 송아지를 사 오시는 아부지, 졸망졸망 아부지를 따라다니는 돼지 새끼와 촌닭들…. 장 풍경은 슬플 만큼 아련하다. 농번기가 끝나면 삼삼오오 오일장을 간다. 이웃동네 친인척 친구네의 안부를 물으며 왁자지껄 정 나루터가 된다. “사돈 자아 왔소, 갈치 샀구마. 집은 핀아요. 오천원 줬구마. 아이구 보소보소 성동띠기 아니요 우실띠기한테 부태기 하나 합시데이. 다오는 초여드랫날 사오본다고 놀러오라 카이소.”


이웃 동네 사람들과 골골 소식을 주고받고, 김 나는 장국시에 얼큰한 막걸리 한 사발, 그리고 콧노래 부르며 파장하는 사람들, 동동구르모 아저씨 북채소리, 아이들은 저리 가라던 약장수는 별꽃 총총 어둠 따라 사라졌다. 생동감 넘치던 오일장은 아득한 옛날 이야기가 되어 버린 것이다.


지금의 시골장은 상설시장의 깨끗함으로 오버랩됐다. 정감나고 후덕한 인심이 있는 추억의 시골장은 찾아볼 수가 없다. 일전에 시골장을 가보았다. 농번기라 장이 제대로 서지 않았다. 손님이 없어서 졸고 계시는 난전 할머니에게 산나물 한 소쿠리를 샀다. 어무이 생각이 난다. 그때 우리 어무이는 돈 되는 것은 죄다 시장에 내다 팔았다. 크고 모양 좋고 이쁜 것을 골라서 호박이랑 참외랑 참깨 등 20리길 머리 또아리 얹어 이시고 오일장을 가셨지만 말이다.


시골장의 풍경들을 통해 한번쯤 추억을 되새김질하고 싶지만 지금은 그럴 수 없다. 오일장을 살리려는 지자체의 지원과 자구 노력도 있지만 많은 소비자들이 관심을 보여야만 오일장이 활성화될 것 같다. 제발 그랬으면 좋겠는데….


"숫골띠기 자왔소.” “아이고 학동때기 아니요. 당최 장문전에 나올 새가 없어서.” 아련한 추억의 목소리를 다시 듣고, 수도 없이 가보고 또 가보고 싶은 내 고향의 정 나루터가 오늘따라 왜 이리 그리운 걸까.


김창제(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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