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뉴스] 최초 작성일 : 2019-07-17 19:28:39  |  수정일 : 2019-07-17 19:28:19.710 기사원문보기
"엄마와 함께 해녀 배를 따라 물질하던 시간 속으로"
제주 해녀의 바다 속 물질 장면.(사진제공=제주도청)
(창원=국제뉴스) 오웅근 기자= "예닐곱 살부터 엄마 따라 해녀 배를 따라다니다 물질하던 시간에는 바닷물 고인 웅덩이에서 피라미들과 놀다가, 해녀들이 바다 물속에서 나올 무렵 나뭇가지들을 모아다가 불을 지폈어요."

이 글은 최근 명품 임플란트 '매직코어'로 주목을 받고 있는 경남 창원시 진해구 '공진철 치과' 원장이 한평생 해녀사업에 몸담았던 어머니와의 유년 시절과 그 일상을 담은 회고담에서 발췌한 글이다.

문인이 아닌 치과 원장임에도 바쁜 일상의 틈새로 써 내려간 유년시절 회고록이 동문 밴드 등을 타고 일반에게 공개되면서 추억어린 향수와 따뜻한 감동으로 회자되고 있다.

엄마와 형, 누나랑 가덕 천성에서.(사진=공진철)
공 원장은 제주도 해녀 출신으로서 부산 가덕도 일원에서 해녀 사업을 펼쳐 온 어머니의 삶을 주저 없이 조명하면서, 어린 시절의 기억을 동화 속 수채화처럼 되새김하고, 긴 세월 그를 감싸 온 엄마와 해녀들의 온기를 촉촉이 전하고 있다.

그의 회고담에는 가덕 섬을 둘러싼 수목과 온통 푸른 하늘과 바다를 휘감은 유년, 소년의 꿈이 물안개처럼 돋아나고, 사랑과 그리움의 상념이 파도 속 같이 따뜻하게 흐르고 있어 잔잔한 감동을 더한다.

공 원장은 회고록에서 제주도와 거제도, 가덕도를 이어 온 부모의 여정을 쫓으며 소설작가를 꿈 꿔 왔던 아버지와 바다 속으로 인생을 담금질 해 온 어머니의 해녀생활을 여과 없이 조명했다.

그러면서 그는 나 어린 9살 때 아버지를 여윈 채 일가친척 하나 없는 타향에서 사남매를 키우면서 숱한 파고를 이겨낸 어머니의 내성(耐性)을 배우고 체득한 후 그 숭고한 가치를 자식들에게도 이식하려 했다.

그리고 최근 신공항 후보지 중 하나로 거론돼 온 부산 가덕도 일원의 대항과 장항, 천성 등으로 해녀사업을 쫓아 주거지를 바꾸며 갓 난 4세부터 철들 무렵에 이르는 소년기에 그 바다와 섬을 배경으로 한 삶을 소개했다. 공 원장은 "어머니는 제주도 여인이 그렇듯 초등학교를 마치고 해녀를 하시다가, 혼기가 되어 어른이 정해주는 대로 아버지와 결혼했다"고 회고했다.

공 원장이 아홉 살 때 아버지를 여윈 후는 어머니가 해녀사업을 이어받아 사남매를 키우느라 갖은 고생을 다했으며, 그 일가친척 하나 없는 타향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은 마음 착한 어촌계 어르신들과 해녀 이모들의 덕분이었다며 공을 돌렸다.

그는 예닐곱 살, 엄마 따라 해녀 배를 따라다닐 무렵, 장항 앞의 조그만 섬에서 항상 그렇듯 엄마와 이모들과 불을 쬐며 데리러 올 배를 기다리는 데 날은 어둡고 침묵 속에 정적이 감돌 즈음, 어느 이모가 지나가다 자신의 손을 밟아서 '앙'하고 울며 엄마 품으로 안겨 들어갔고, 그 이모는 미안해서 어쩔 줄을 몰라 했던 기억을 새삼 떠올렸다.

어린 시절 유난히도 자의식이 강한 그가 가족들과 식사 하던 중 누군가가 놀려 숟가락을 내려놓고 밥을 안 먹는 시위를 벌였으나 아무도 말리지 않고 '안 먹으면 자기 손해지' 식의 화를 부추긴 적이 있었다.

이에 공 원장은 "다락방의 이불 속에 파묻혀 '굶어 죽기'로 결심, 자신의 죽음 앞에 엄마와 가족들이 너무 슬퍼서 며칠을 울 것이라는 상상으로 공연히 슬픔이 북받쳐 하염없이 울다 잠이 들었다"는 천진한 추억을 되새김했다.

그러면서 그는 초등학교시절 천성의 바닷가에서 혼자 놀던 기억을 떠올렸다. "남중의 끝 대항 가는 쪽 길 밑의 바닷가에 물이 나면 바위에 둘러싸인 물웅덩이에서 피라미들이 놀고 있다. 그놈들을 잡는 게 여간 어렵지 않아 막다른 곳으로 몰아 물과 함께 떠 올리면 어디로 새어 버렸는지 두 손바닥만 남아있다."고 묘사했다.

그리고 "바닷가에서 성을 쌓는 놀이를 즐겼는데 단순한 '모래성'이 아닌 바위와 돌과 모래를 재료로 한 웅장한 것"이라고 뽐내고는 "그 견고한 성은 쓰나미 처럼 밀려오는 파도에 결국 함락되고, 늘상 내일은 이길 것이란 다짐을 번복했다. 그 때 쌓은 패배의 경험으로 살다가 생기는 수많은 실패 앞에 의연할 수 있었다"고 고백했다.

진해탑산 계단에서 부모와 함께 포즈를 취한

공진철 원장의 어린시절 모습.(사진제공=공진철)

그의 회고록에는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이 묻어 있다.

"아버지가 친구 분들과 술자리를 한참을 함께 하시다 천성으로 넘어오는데 천성곡(대항곡)을 한참이나 남겨 두고선 술이 많이 취해서 못가겠다며 한숨 자고 가겠다고 하신다. 이제 곧 어두워 질 텐데 아버지가 술에 취해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는 거다. 안된다며, 가자고 팔을 끄집어 당겨도 정말로 나무 밑에 앉아 잠들어 버리는 거다."라며 낭패한 상황을 묘사한 후 "나는 생애 첫 번째 중대한 결정을 내려야 했다"고 밝혔다.

이르자면 "여기서 아버지가 잠 깰 때까지 기다릴 것인지 내가 가서 엄마를 데려올 것인지"라는 기로에서 "엄마를 데려오기로 결정을 하고 천성곡까지 왔는데 그기도 두 갈래 길이 있어 잘못 선택한 길을 가다가 암흑으로 쌓인 산길에서 겁에 질려 엄마를 부르며 울면서 산길을 다듬었다는 것.

이 때 산모퉁이 길에서 술에 취해 잠드셨던 아버지가 어느새 잠이 깨셨는지, 자신의 이름을 부르면서 길도 나지 않은 가시나무 숲을 헤치고 달려와서는 자신을 꼬옥 안아주고 난 후 등에 업은 채 집으로 갔으며, 아빠의 체온을 느끼면서 곤히 잠들고 말았다"는 부자(夫子) 간의 살갗다운 사랑을 전했다.

그는 초등학교 시절 미역을 널어놓았다가 점심때쯤 반쯤 마르면 뒤집고, 저녁이 되면 걷는 일과 바람이 불면 미역이 날아가지 않게 돌을 얹어 놓는 일을 포함해 우무(우뭇가사리)를 뒤집어 완전히 마르면 걷어내는 일을 도맡았다.

그 밖에도 바닷물을 한 수항 가득 받아와서 성게(앙장구)를 조개고 까는 일과 해녀 배를 따라 다니며 땔감을 모으고, 납이나 조업한 물건들을 옮기는 일과 김매기, 고무마 캐기 등의 농사일, 산에 나무하러 가기. 윗집 할머니 소 먹이러 가기 등 어촌에서의 일상을 더듬었다.

그는 그런 노동의 신성함과 가족이 먹고사는 일에 함께 동참할 수 있게 된 데 대한 자긍심과 감사를 간직하고 있었다.

이런 속에서 바다 저 너머의 파란 세계를 꿈꾸고, 그 섬에서 체득한 성실함을 동력으로 유학시절과 밝고 투명한 삶을 일구면서 의료분야에 투신하게 된다.

공 원장은 부산치대를 졸업한 후 진해치과의사회 회장과 창원시 치과의사회 부회장을 역임하고 대한디지털 치의학회 정회원으로서 병원을 운영하면서 '최소침습의 무절개 시술'이란 임플란트 '매직코어' 시술로 장안의 주목을 받고 있다.

가덕도 행 배 위에서 아들 국성이와 달 찬영이를 데리고 '어머니의 바다' 이야기를 전하는 공진철 원장.(TK사진제공=공진철)
공 원장은 가끔 자신을 낳고 키운 부모님의 삶의 터전인 가덕도 그 섬과 바닷길을 쫓아 아들 국성(대학1년) 군과 딸 찬영(고3년) 양을 데리고 할머니가 물질한 그 바다 이야기를 들려주곤 한다.

국성 군은 지난 2019년 대입수능에서 경남 수석을 차지하고 서울대 정치외교학과 1학년에 재학 중이며, 찬영 양은 경기예술고등학교 연극영화화학과 3학년에 재학하면서 타고난 예능으로 재기발랄함을 보여주고 있다.

한편 '해녀'란 바닷속에 산소공급 장치 없이 들어가 해조류와 패류 캐는 일을 직업으로 삼는 여성을 말하며 2016년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제주해녀문화가 등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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