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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투데이] 최초 작성일 : 2020-12-03 06:00:28  |  수정일 : 2020-12-03 06:01:15.420 기사원문보기
[초대석] 김혜수 "괜찮지 않다고 생각했던 내 삶, 영화에 담겼다"

[이투데이 김소희 기자] "저는 어떤 일을 이겨내고 극복하려는 스타일이 아니에요. '이 또한 지나가는 것'이라 생각하며 그렇게 보내요. 할 수 없는 건 내버려 둬요. '이 정도', '그 정도'는 괜찮다는 생각인 거죠. 처음으로 제가 괜찮지 않다고 느꼈던 적도 있어요. 현수도 바로 그 지점에서 출발하더라고요."

배우 김혜수의 자전적 소설인 걸까. 영화 '내가 죽던 날'(감독 박지완)의 형사 현수는 김혜수 그 자체였다. 배우 스스로 강조한 부분이다. '나는 매일 꿈을 꿔. 꿈에도 내가 죽었더라고. 죽어있는 나를 보면서 그런 생각을 해. 저걸 좀 치워주지. 누가 치워라도 주지'라는 영화 속 대사는 김혜수가 직접 썼다.

최근 서울 종로구 삼청동 인근에서 김혜수와 만났다. 김혜수는 "저도 괴로웠던 순간에 굉장히 오랫동안 반복적으로 그런 꿈을 꿨다"며 "현수의 불완전한 상황과 잘 맞아떨어진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영화 '내가 죽던 날'은 이혼 위기에 놓은 형사 현수(김혜수 분)가 한 소녀 세진(노정의 분)의 마지막 행보를 따라가며 결국 자신의 상처를 마주하고 치유하며 극복해가는 힐링극이다.

제목부터 강렬하다. 김혜수는 이 강한 제목을 마음으로 '확' 받아들였다. 김혜수는 '내가 죽던 날'을 '내 마음이 완전히 죽은 날'로 받아들였다. 거기서 그치지 않고 과거형 제목을 '완전히 죽었지만 다시 살아갈 날들, 다시 살기 위한 날'로 새롭게 해석했다.

"책을 한 장 한 장 넘기면서 이해했어요. 현수의 스토리가 곧 제 이야기는 아니지만 감정적으로 닮아있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어요. 현수를 따라가다 보니 영화에서 하고자 하는 게 무엇인지 알 수 있었죠. 현수가 관객인 것처럼 느낌을 전달해야 한다고 판단했어요."

다음은 김혜수와 일문일답

- 현수가 인간 '김혜수'와 닮은 지점이 있다면.

"살다 보면 상처나 고통 그리고 절망적인 순간을 경험하게 되지 않나. 제가 전혀 알지 못한, 제가 시작하지 않았는데도 그런 상황을 맞닥뜨릴 때가 있다. 그런 점이 닮았다."

- 현수가 사건이나 정황을 좇는 건 곧 세진을 따라가는 일이다. 그러면서 현수의 마음도 따라가는데.

"신기하게 현수, 세진, 순천댁(이정은 분)의 말에 제가 했던 말이 있다. 현수가 친구한테 '나 정말 몰랐다. 내 인생이 멀쩡한 줄 알았다가 이렇게 됐다'고 말한다. 세진이는 '나는 왜 바보 같이 아무것도 몰랐을까요. 아무것도 몰랐던 것도 잘못이죠. 그래서 나 벌 받나 봐'라고 한다. 제가 쓴 대사가 아닌데 대본에 있었다. '인생, 네가 생각하는 것보다 길어'라는 말도 했다. 이건 뭐지? 라는 생각을 했다."



- 스스로 현수랑 동일 시하는 것 같다. 위로도 많이 받은 것 같다.

"작품이라는 게 지나고 보면 다 운명적인 게 있다. 이 작품은 기묘하게도 나 스스로 절망감에 휩싸여있을 때 만난 작품이다. 물론 절망을 경험했다고 해서 절망의 연기를 잘할 수 있느냐는 별개의 문제다. 운명적, 시기적으로 '이 작품은 내 것이었나 봐'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책을 읽을 때 뭔지 모르게 묵직한 위로가 느껴졌다. 그래서 나를 위해서도, 나보다 더 힘든 사람을 위해서도 제대로 해내고 싶은 마음이 컸다."

-감정의 골이 깊은 캐릭터를 연기했는데.

"촬영 전 감독, 주요 스태프, 배우들과 많은 의견을 나눈다. 글 속에 있는 걸 잘 구현하기 위해 다른 아이디어 내기도 하고, 과한 부분을 조금 완화하는 식이다. 그 부분에 충실했다. 감정적으로 절대 쉽지 않은 역할이었다. 어떻게 보면 운 좋게, '내가 죽던 날' 촬영을 마치고 이틀 뒤 드라마 '하이에나' 촬영을 했다. 배우는 앞에 놓인 작품에 초집중해야 한다. 마치 현수처럼 '하이에나'에 집중했기 때문에 영화의 여운을 자연스럽게 잊을 수 있었다."

- 시나리오만 잘 구현하면 좋은 작품이 나올 거란 확신이 있었나.

"시나리오에서 커다란 감정을 느끼고 전해야 할 감정을 정확하게 느꼈다고 해서 그걸 구현하는 건 완전히 다른 문제다. 제대로 표현하고 싶은 마음은 컸다. 두려움도 이었다. 시나리오는 너무나 명확하므로 내 마음으로 전해지는 건 분명한데, 구현해내는 것에서 간극이 클 수 있어서다. 촬영하면서 우리가 느낀 것들이 잘 담기고 있는지, 전달이 잘 될지 걱정하기도 했다."

- 감각을 잃은 팔 때문에 고통스러워한다. 심리가 죽으니 몸도 죽어있는 듯한데.

"대사에도 나오지만, 살아보기 위해 화장실 문에 팔을 찧은 거다. 이혼은 많이들 겪는 일이지만, 현수에겐 죽을 만큼 힘든 일이다. 어떤 고통이라는 건 그 고통을 경험하는 사람 말고는 누구도 그만큼 느낄 수 없다. 현실을 잊기 위해, 다시 살아가기 위해 무엇이라도 해야 하는데 팔이 예전처럼 말을 듣지 않는 거다. 마음도 고장 나 있어서 팔에 더 심한 고통을 주는 가슴 아픈 장면이다. '몸이 과거로 돌아가는 것처럼 마비가 풀리듯 마음도 과거의 멀쩡했던 나로 돌아갔으면'하는 마음이 컸다."



- 소위 작은 영화다. 요새 작은 영화에 유명 배우가 출연하는 움직임이 보이는데.

"배우는 배우로서 도전할 가치가 있는 작품을 선택한다. 내 능력 이상의 것을 하기 위해 하지 않는다. 오래 한 배우고 지명도가 있어서 힘을 실어주기 위해 마음에 들지 않는 작품을 해본 적도 없고, 그럴 생각도 없다. 소재가 문제가 아니라 이야기가 제대로 갖춰져서 출발하는지는 고민할 필요가 있다. 작은 영화라고 다 미덕 있지 않다."

- 연기하지 않을 때 어떻게 지내나.

"막 있는다. 게으르고 지저분하고 못생겼다."(웃음)

- 항간에는 집에서도 힐을 신고 다닌다는 이야기도 있었다.

"어릴 때 이야기다. 하이힐을 신으면 기분이 그렇게 좋았다. 옷도 제대로 갖춰 입지 않고 힐 신고 왔다 갔다 하는 걸 좋아했던 거다. '관리의 끝판왕'은 무슨. 요즘 집밖에 외출하지 못하는 상황인지라 한 달 넘게 집에만 있기도 했다. 책도 많이 볼 것 같았는데 막상 평소 먹지 않던 것까지도 먹게 되더라. 큰일 났다 싶어서 만 보 걷기도 하고 생일 선물로 받은 자전거도 탔다. 권투도 했는데 재밌더라."

- 이번 영화가 김혜수의 대표작이 될 수 있을까.

"대표작이 있어도, 없어도 상관없다. 모든 작품이 소중하고 나는 충실했다. 대표작은 내가 정하는 것도 아니고 누가 정해줘도 상관없다. 작품은 선택함과 동시에 시작이 된다. 그리고 준비하고 촬영하는 게 전부다. 흥행이 되면 감사하지만, 그것 때문에 의미 있고 행복했던 기억까지 좌절하게 되거나 괴롭진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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