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미디어뉴스통신=박주환 기자] 독도는 울릉도와 제주도보다 먼저 생겨난 우리나라의 가장 동쪽에 위치한 화산섬으로 동도와 서도 두 개의 큰 섬과 89개의 부속 도서로 구성되어 있다. 섬의 경사가 급해 비가 내리면 빗물이 섬의 비탈을 따라 흘러내려 토양이 척박한 편이지만, 다양한 동식물이 서식하는 생태계의 보고로 섬 전체가 천연기념물 제336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다양한 암석을 관찰하고 해저 화산의 형성과 진화 과정을 살펴볼 수 있는 세계적인 지질 유적이기도 하다. 독도주변해역은 해양자원의 보고로서 그 가치가 무궁무진하며 미래의 지하자원이 풍부히 매장되어 있어 그 경제적 가치 또한 매우 클 뿐만 아니라 그 주변수역으로 어업을 나간 어민들에게 쉬어갈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해 주는 ‘쉼터’로 멀리 어업을 나가는 어민들에게는 안식처와 같은 곳이다.

오늘날 한일 양국간에 전개되고 있는 ‘독도’ 분쟁의 핵심은 ‘영토 분쟁’이며 이 문제는 단순히 법적·정치적 논리를 떠나서 국민 정서에도 엄청난 영향을 미치고 있는 과제이다. 독도는 역사적, 지리적으로 엄연한 우리 영토로서 현재 우리나라가 실효적으로 지배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은 ‘독도는 일본 땅’ 이라고 적힌 국방백서를 발간하고 다케시마에 관한 동영상을 유투브에 올리며 독도가 위치한 동해를 일본해로 표기하는 등 지속적으로 독도에 대한 영유권을 주장하고 있다. 이처럼 일본의 치밀한 독도전략과는 달리 그동안 우리 정부의 국가 안보적 대응은 소극적이었으며 독도에 대한 교육 또한 부족하다. 독도 문제의 해결은 역사 왜곡을 바로잡고 민족의 정체성을 확립하는 문제로 독도에 대한 영유권을 보다 확실히 하기 위해서는 다차원적이고 체계적이며 일관성 있는 정책과 전략이 요구되며 국가적·사회적·개인적 차원의 다양한 노력이 필요하다.

독도문제에 대해 지대한 관심을 갖고 역사 바로 세우기’ 운동을 적극 전개해 온 ‘명예 독립운동가’인 독도한의원의 이풍용 원장, 이공재 대표가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다. 이풍용 원장은 ‘이삼평 도공 비문정정 추진운영위원장, 민족역사족보학회 부설 민족역사시민대학 명예학장, 민족족보학회 역사연구담당 상임부회장, NGO 환경운동본부 연기군지회장, 독도향우회 충청남도지회장, 3·1동지회 충청남도지회장’ 등을 역임했다. 주소지를 독도로 이전하고, 한의원의 명칭을 독도한의원으로 변경한데 이어 독도지킴이 캠페인도 전개해온 것 그의 남다른 독도사랑에 기인한다. 또한 아내 이공재 대표 역시 30년이 넘는 세월을 그의 곁에서 뜻을 지지하고 함께하며 역사정립운동에 동참해 왔다. 이풍용 원장은 “그 동안 독도문제에 집중할 수 있도록 물심양면으로 지원해 준 아내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고 전했다.

일본의 독도영유권에 대한 주장은 한국뿐만 아니라 국제사회에서도 규탄 받고 있다. 프랑스 아틀라스 출판사의 ‘아틀라스 세계지도책 2012년 판’에는 “독도는 1954년 이래 한국이 지배하고 있으며 일본이 영유권을 주장하고 있다”는 주석이 달려 있으며 독도가 한국의 영토임을 입증하고 있다. 또 1965년 ‘코리아 평론’ 2월호에 실린 ‘독도문제의 역사적 고찰’이라는 야마베 겐타로의 논문에서도 “독도문제는 지리나 지지의 문제가 아닌 제국주의 영토 확장욕에 따른 역사의 문제이며, 설사 지리나 지지의 측면에서 본다 하더라도 독도는 맑은 날 을릉도에서 육안으로도 보이기 때문에 한국의 주장은 정당한 것”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우리의 것을 지키기 위해 함께 한다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독도 수호 운동은 국제화 시대에 우리의 주체성을 갖는 것의 시작이라고 볼 수 있다. 

“일본의 억지 주장에 논리적이고 이성적으로 대응하고, 국제사회에 독도가 대한민국 땅임을 분명하게 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우리 스스로 독도를 바르게 아는 것이 중요하다.”며 “미래발전 성장동력으로서 무한한 가치를 가지고 있는 독도를 수호해야 하는 것은 현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들의 책무다. 정부는 물론, 교육계, 시민사회, 언론 등이 독도에 대한 끊임없는 지원활동과 전 세계를 대상으로 적극적이고 전략적인 홍보 등 다양한 노력과 독도와 관련된 역사 관련 자료를 국제화하여 이를 국제사회에 알리려는 노력이 뒷받침된다면 독도 영토분쟁을 해결하고 영원히 독도가 한국의 영토임을 전 세계에가 인정하게 될 것.”

시인이자 동양철학박사 등으로도 왕성한 활동을 이어온 이풍용 원장은 “민족의 진정한 광복은 조국통일이 이룩되는 날 비로소 구현된다.”며 ‘두곡통일론’을 펼쳐 왔다. 그는 계룡산이 만년인류역사의 새로운 시원지가 될 것이라고 내다보고 오랜 세월 연구한 ‘두곡통일론’을 알리기 위해 ‘두곡 평화통일 운동본부’도 출범시켰으며 ‘두곡평화통일 시민운동’도 계획하고 있다. 이 원장은 “앞으로 세계는 결국 하나의 국가로 뭉쳐질 것이다. 이를 받아들이기 전에 하루 빨리 자주 통일을 이뤄 세계일원국 건설을 통한 선도국으로 거듭나야 한다. 세계 모두가 주시하고 있는 우리의 자주적 평화통일이야말로 이를 위한 중요한 키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풍용 원장은 ‘도조 이삼평 기념비’ 오류를 바로잡은 인물로도 익히 알려져 있다. 이풍용 원장은 “정유재란 때 일본으로 끌려간 이삼평 도공은 ‘일본 백자의 효시’가 됐다. 1616년 백자광석의 발견으로 일본에서 처음 백자를 만든 것이다. 그러나 비문에는 버젓이 ‘정한(征韓, 한국정벌)’이란 글자가 새겨 있고, ‘이삼평 공이 스스로 길(조선침략)의 안내를 협조했으며 그 공적으로 귀화시켜 주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왜곡된 역사를 바로 잡지 않으면 올바른 역사 인식을 가질 수 없다.”고 전했다. 이에 이풍용 원장은 30여 년간 고독한 싸움을 이어가며 일본 극우파 등과 맞서 수없이 한국과 일본을 오간 끝에 비문을 정정하는데 성공했다. 일본의 극우파들이 반대가 극심했고 행정적인 업무조차 쉽게 처리되지 않았다. 이 원장의 끊임없이 이의를 제기하고 설득을 거듭해 결국엔 내용을 수정하는 데 성공했다. 그의 노력 덕분에 이삼평 도공에 대한 평가가 제자리를 찾을 수 있었다. 이러한 공로로 이 원장은 명예독립운동가로 인정받아 한국광복군 배지도 수여받았다.  

대한민국의 역사가 깃들어 있으며 한민족의 얼이 살아 숨 쉬는 독도를 위해 오늘도 굳건히 그 자리를 지키며 독도수호를 외치는 이풍용 회장, 그리고 그의 든든한 동반자 이공재 대표. 그들의 선한 영향력이 머물지 않고 흐르는 물처럼, 보이지 않는 바람처럼, 사회 전역에 퍼져나가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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