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공복(公僕)

발행일 2023-03-29 14:49:05 댓글 0 글자 크기 키우기 글자 크기 줄이기 프린트


신준민

사회2부

“1971년부터 인공어초 사업에 1조 원이 넘는 국민 혈세를 쏟아 부었는데도 바다 사막화가 여전한 것은 말 그대로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에 그치기 때문이다.”

2020년 국회 국정감사에서 바다숲 조성사업의 의혹을 제기한 발언이다.

당시 국감에 참여했던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의원들은 바다숲 조성을 위한 인공어초의 80%가 국토교통부 고시 표준 시방서를 준수하지 않는 등 부실하게 제작돼 오히려 해양 생태계를 황폐화시킨다고 지적했다.

해양수산업계는 바다숲 조성사업의 성과가 저조한 이유로 바닷속 현실을 무시한, 현장 전문가들의 의견절차가 제대로 반영되지 못한 탁상행정을 지적하고 있다.

독일의 경우 4차 산업혁명으로 이론과 실제 직업능력의 통합이 더욱 강조됨에 따라 해양수산 관련 직업계 고등학교에서 직업자격증을 취득하면 해당 전공 대학입시가 면제된다.

마이스터슐레 졸업장이 종합대학의 학사학위와 동일하게 취급되면서 고급인력 판단에 학력이 변수로 작용하지 않는 것이다.

반면 우리나라는 여전히 학자들의 권위와 그들의 이론을 중요시하는 경향이 높다.

바다숲 조성사업의 경우 해양수산 관련 학자들과 현장 경험이 많은 잠수사들 간 정보교류가 활성화돼야 사업이 원활히 추진될 수 있다.

그러나 이론으로 무장한 학자들의 권위와 입김이 우선시되면서 현장 기술자들의 경험과 노하우가 무시당하는 일이 다반사다.

다시 말해 한국수산자원공단(FIRA)이 추진하는 바다숲 조성사업 과정에 현장 기술자들의 목소리가 제대로 반영되지 못하면서 사업 효율성이 매우 낮다는 얘기다.

여기에 현장 기술자 부족도 사업 과정의 문제점으로 부각되고 있다.

현재 국내에서 바다숲 조성사업에 참여하고 있는 해양엔지니어링 업체는 150여 곳이다.

하지만 이들 업체가 보유하고 있는 인력은 해양공사 전문 기술자들이 아닌 단순 잠수사가 대부분이다.

특급기술자 1명을 포함해 관련 기술자 3명 이상과 사무실만 보유하면 관련 사업 면허를 취득할 수 있어 사업구조상 신규 업체 진입이 용이하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사업 면허를 따기 위해 특급기술자 자격증을 빌려 해양엔지니어링 업체를 설립하는 경우가 빈번하다.

더구나 특급기술자의 나이가 고령이다 보니 장기간 잠수작업이 힘든 만큼 사업 현장 참여율이 매우 낮은 실정이다.

무엇보다 해양 전문가들은 한국수산자원공단(FIRA)의 폐쇄적인 운영 방식이 바다숲 사업 부진의 주된 원인이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

FIRA는 해양수산부 산하 정부기관으로, 조직 구성원부터 문제점을 안고 있다.

이사장과 제주도 및 동·서·남해안을 관리하는 4개 본부장 자리를 정치권 인사나 해양수산 분야 퇴직 관료들이 꿰차는 낙하산 인사로 잡음이 끊이지 않고 있다.

이들 인사와 해양엔지니어링 업계 유착관계가 근절되지 않으면서 바다숲 조성공사 참여 업체에 대한 심사 역시 사실상 유명무실하게 진행된다는 합리적인 의혹이 제기되는 상황이다.

특히 FIRA동해본부는 최근 바다숲 부실공사 문제가 더욱 확대되면서 관료와 마피아의 합성어인 ‘관피아’ 폐해가 심각하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해양 생태계 복원을 위해 설립된 FIRA가 앞으로 제 역할을 다하기 위해서는 대대적이고 혁신적인 모습으로 환골탈태해야 한다.

제주도 및 동·서·남해안 등 4개 본부장 임명 방식 또한 낙하산 인사가 아닌 현안과 실무 경험이 풍부한 직원들의 내부승진으로 선회돼야 할 것이다.

공무원을 ‘공복(公僕)’으로 지칭하는 이유는 국민을 받드는 심부름꾼, 나아가 애국자가 되라는 명령이다.

FIRA가 진정한 공복으로 거듭나길 기대해 본다.

신준민 기자 sjm@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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