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도 취미] 난 심심할 땐 간판을 봐.

29STREET
29STREET2021-02-05 16:26: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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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미요? 없어요.ㅎㅎ”
“누가 그래? 야 너두 취미 있어. ( ͡° ͜ʖ ͡°)”

취미가 없다고 고민하는 사람들을 위해 에디터의 소소한 취미들을 소개한다. 이딴 것도 취미야? 라고 하기 보단, 어 그럼 나도 이런 취미가 있었네!라는 발견과 의견이 이어지길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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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좋은간판 사이트에 올라온 공모전 수상작들
본 에디터는 취미부자다. 아니 뭐 남들처럼 서핑이니 캠핑이니 거창한 취미는 아니고. 비 오는 오후 2시의 취미는 LP 듣기. 날씨 좋고 미세먼지 없는 날의 취미는 창문 열고 코 내밀어서 마스크 없이 바깥 공기 마시기 따위의 소소한 것들도 포함이다.

오늘 소개할 취미는 간판 구경이다. 어, 지금 몇몇 사람은 코웃음을 치거나 “뭐래”라고 육성으로 말한 것 같다. 하지만 간판 구경의 매력을 한 번 들어보면 우린 같은 취미를 공유하는 동지가 될 수도 있다.

넌 슬플 때 힙합을 추니? 난 심심할 때 간판을 봐.
지하철역 출구 앞에서, 동네 시장 노포 앞에서 친구를 기다릴 때 주변 간판을 본다. 스마트폰을 뒤적거리거나 지나가는 사람들을 구경할 때도 있지만, 보통은 간판이 먼저다.
네이버 거리뷰 캡처
시내 곳곳의 프랜차이즈의 간판은 어딜 가나 비슷한 구석이 있지만 알록달록해서 눈길을 잡아끈다. 최근에는 디자인에 신경 쓴 스타일리시한 간판들도 많아 구경하는 맛이 있다. 시장에는 주인 할아버지의 소매 깃만큼 낡고 닳아 글자마저 사라진 조발(족발)집 간판도 있고, 주변과 묘하게 어울리는 듯 어울리지 않게 멋들어진 청년 치킨집 간판도 있다.

나무로 만들어진 간판은 따뜻한 느낌을 준다. 철제 바탕에 글씨를 음각한 간판은 묘한 트렌디함을, 살짝 부식된 철제 간판은 오래된 옛 것 같은 정취를 풍긴다. 디자인을 구경하는 재미에 더해, 저 가게는 언제부터 있었을까? 왜 망했을까? 같은 상상을 하기도 좋다. 물론 멍하니 바라보고 있기에도 좋은 초점이 되어준다. 뇌의 휴식을 위한 '멍때리는' 시간이다. 
코로나19 집콕에도 간판 구경은 멈추지 않아
코로나19로 밖에 나갈 일 없는 요즘은 집에서 인스타그램으로 간판 업체 피드를 구경하는데, 거리에서 하는 간판 구경과는 또 다른 맛이 있다. 

#아름다운 간판, #디자인 간판 등의 키워드를 입력하면 간판 제작 업체나 가게 사장님들이 직접 올린 간판 사진들이 스마트폰 화면을 가득 채운다. 업체들이 스스로 잘 만들었다고 엄선하여 올려둔 간판 사진들은 디자인 예술 작품을 관람하는 ‘취미’와 별반 다를 것이 없다.

특히 간판 제작 업체에서 올린 사진들에는 디자인 포인트, 제작 시 신경 쓴 부분 등에 대한 이야기가 곁들여진 것도 있어 보는 재미를 더한다. 
서울 관악구 '청수부동산', 서울 종로구 '효제눅', 경기 성남시 '청유', 한국옥외광고센터 '2020 우수간판 공모전' 장려상
경북구미시 '작은 토끼야 들어와 편히 쉬어라', 한국옥외광고센터 '2020 우수간판 공모전' 우수상
전남 광양시 '카페 554-7', 한국옥외광고센터 '2020 우수간판 공모전' 우수상
경북 구미시 '토마토약국', 한국옥외광고센터 '2020 우수간판 공모전' 최우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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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한국옥외광고센터나 각 지자체에서도 ‘좋은간판’, ‘아름다운간판’ 공모전 등을 진행하기도 해서 볼거리는 끝도 없다. 

특히 서울 거주민인 에디터는 서울특별시 '서울 좋은 간판' 홈페이지에 올라와 있는 간판들을 좋아한다. 내가 가봤던 동네에서 내가 몰랐던 아름다운 간판을 발견하는 재미가 있기 때문이다.
몇 년 전 여행 중 만났던 간판들. ⓒ에디터 HWA
예전에는 해외 여행지에서 만나는 꼬부랑 글씨의 간판들을 구경하는 걸 즐기기도 했다. 하지만 시절이 하수상한 지금은 잠시 사진첩 속에 고이 넣어 두어야할 취미가 되어버렸다. 조금 아쉽지만 다 괜찮아질 그 날을 기다리며, 창문 너머의 김밥집 간판을 한 번 더 바라본다.

에디터 HWA hwangjh@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