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17일 방송된 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이하 '꼬꼬무')에서는 '전설의 코리안 파이터 - 최배달 VS 역도산'이라는 부제로 일본에서 국민적 영웅이 된 두 한국인 파이터, 최배달과 역도산의 파란만장한 삶과 숨겨진 이야기를 조명했다.
극진 가라데를 창시한 최배달은 일본 무도계 강자 100명을 상대로 승리하고 심지어 싸움소까지 제압하며 명성을 떨쳤다. 한편, '천황 다음 역도산'이라는 말을 낳은 역도산은 일본의 스모에 도전했으나 한국인이라는 한계를 느끼고 프로레슬링으로 전향했다. 미국에서 프로레슬링을 배우고 돌아온 그는 타격 기술 보완을 위해 최배달에게 도움을 청했고, '가라데 촙'이라는 자신만의 무기로 9개월간 260여 회의 대회에서 승리하며 프로레슬링계의 스타로 등극했다.
역도산은 일본에 프로레슬링을 도입하고 첫 방송국 개국과 함께 중계되는 자신의 경기에서 승승장구하며 미국에 대한 열등감이 컸던 일본인들에게 대리만족과 희열을 선사하며 국민적 영웅이 되었다.

그러나 파트너 기무라와의 갈등으로 역도산과 기무라의 대결이 성사되었고, 역도산이 기무라를 무자비하게 꺾는 모습을 지켜본 최배달은 분노하며 역도산에게 도전장을 내밀었다.
하지만 두 사람의 대치는 "같은 조선인끼리 싸우지 말라"는 외침에 멈춰 섰다. 서로의 고난과 역경을 잘 알기에 최배달과 역도산의 대결은 결국 성사되지 않았다.
이후 사업가로 승승장구한 역도산은 부의 제국을 완성하면서도 조국에 대한 그리움과 분단된 조국에 대한 아픔을 항상 품었다. 그는 비밀리에 한국 체육계를 지원했고, 1963년 남한 방문 시에는 스포츠센터 건립과 동경 올림픽 참가 지원을 약속하며 조국 발전에 힘썼다.

최배달 또한 귀화를 선택하며 자신의 이름을 '배달'로 지어 조국에 대한 사랑을 드러냈고, 금의환향 후 태릉선수촌에 기증을 마다하지 않았다.
39세에 성대한 결혼식을 올렸던 역도산은 결혼 6개월 후 야쿠자의 칼에 찔려 사망하며 일본 사회에 큰 충격을 주었다. 공식 사인은 화농성 복막염으로 알려졌다. 최배달은 일흔의 나이에 폐암으로 사망하기 전까지 "반드시 하겠다"는 신념으로 평생을 치열하게 살았다.
'꼬꼬무'는 모든 차별을 이겨낸 최배달과 역도산, 두 격투가의 인고의 과정을 통해 이들의 뿌리가 한국, 한반도에 있다는 변치 않는 사실을 재조명하며 깊은 울림을 선사했다.